나는 몇 번이나 오랜 친구의 이름인 양, 구화, 삼복, 동보, 울월스란 상호를 되새김질하며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트레이드 조(Trade Joe’s)가 93가 콜럼버스
애뷰느에 곧 새로 오픈할 예정이다. 이따금 지나다니며 공사가 얼마나 진척됐나를 들여다볼 정도로 기대된다.
한아름 마켓도 110 가와 브로드웨이에 오픈했다. 한인 마트는 감히 바라지도 않았는데 덤으로 생겼다. 두 슈퍼마켓 모두 내가 걷는 산책 반경
안에 있어서 두루두루 식품조달이 쉬워졌다.
옛날에 나는 롱아일랜드에 있는 학생 기숙사에 살며
학교 구내식당에서 세끼를 해결했다. 가뜩이나 마른 몸이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해 더욱 말라 비틀어져 그 당시 내 몸무게가 90파운드나 됐을까? 서울 그리고 한인과 완벽하게 차단된 시간이었다.
물 건너 산 넘어 기차를 타고 찾아간 곳이 플러싱에
있는 구화 식품이었다. 동보식품에서 나온 무말랭이
무침과 고추장 그리고 쌀을 샀다. 김치는 냄새날까 봐 들었다 놓기를 서너 번 아쉽게 놓고 나왔다.
울월스에서 산 냄비에 밥을 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쌀밥과 무말랭이를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밥 먹다 말고 흐느꼈다. 미국 온 지 반년만이다.
외로움은 병이었다. 그러나 더 급했던 것은 원래 짧은 입맛에 제대로 먹지를 못 하는 것이었다.
맨해튼으로 학교를 옮겼다. 그리고 남자도 만났다. 그도 무척 말랐다. 역시 섭생이 부실함에서 오는 것이 분명했다.
몹시 추운 눈 오는 날, 미드타운에 있었던 삼복식품에서 김치를 샀다. 한번 가 봤던 그 남자의 그랜드 스트릿에 있는 건물 앞, 하수구 뚜껑에서 김이 뿌옇게 올라오던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갔다. 김치를 주려고. 그런데 눈 덮인 코블 블록
위 하수구 뚜껑마다 여기저기서 김이 나왔으니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허드슨 벨리에서 부는 매서운 바람은
브로드웨이 빌딩 사이를 지나면서 가속력이라도 붙는지 그 삭풍 속을 헤집고 다니다 감기에 걸려 돌아와 앓았다. 그 당시는 김치를 그야말로 ‘금치’라고 불렀을 정도로
귀했으니 그의 마음을 얻을 만했다.
지금은 구화식품도 삼복식품도 사라졌다. 몇 년 전에 동보식품 마크가 새겨진 고추장을 보고 너무 반가워 산적이
있지만, 예전과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찾고자 하는 것 뭐든지
살 수 있었던 여기저기 뿌려 놓은 듯 그 많던 울월스(Woolworth)도 다운타운에 화려한 빌딩만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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