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아련한 소리가 들린다. 의식이 서서히 깨어남과 동시에 소리도 점점 커졌다. 달콤한 잠을 간신히 밀어내고 눈을 떴다. 우리 집 벨 소리다. 새벽 1시, 문을 열던 남편이 일본에 가 있는 작은 놈이라며
소리 지른다. 아니, 아이가 연락도 없이?
달랑 백 팩 하나 메고 들어서는 말라 비틀어진 아이를
보니 주체할 수 없이 울음보가 터졌다.
"갑자기 무슨 일로 왔냐?"
"무작정 오고 싶어 왔어요."
어쩜 그리 나를 닮았을까? 유학시절 나도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연락도
없이 서울에 갔다. 새벽에 아버지가 남산 가느라 문을 열어놨는지 열린 문을 살그머니 밀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던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던 일을 계속하려다
불현듯 다시 쳐다봤다. 들고 있던 그릇은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지금의 나처럼
"아이고 내 새끼"
기쁜 통곡을 내 뿜으셨다. 몇 날 며칠을 엄마 침대에 누워 엄마 냄새를 맡고 이야기하며 행복했었다.
아이도 일주일 내내 누워 있다 떠났다. 아이가 깰까 봐 살금살금 먹고 싶다는 베이글,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조용히 준비하고는 혹시나 일어났나 문을 살짝 열어보곤 했다. 잠에 곯아떨어진
아이, 직장생활이 재미있고 좋다지만 타국생활 안 봐도 삼천리지!
아이는 어릴 적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졌다. 그가
태어난 일본 문화를 알고 느끼려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잡아 떠나서는 2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정작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은 서구문화에 빠졌다는데.
그 어미인 나는 왜 아이가 하루키에 빠졌나를 알아보려고 구글을 뒤져 하루키 음악을 듣고 그의 책을 읽는다.
“인제 그만 뉴욕으로 돌아오면
안 되겠니?”
“엄마, 나 코미디언 되고 싶어요.”
“코미디언 해.
"코미디언 되기가 싶지도 않고 먹고 살기도 힘들잖아요?”
“너 어릴 때 코미디 상 많이 받았잖아. 소질 있어. 엄마가 응원해 줄게. 엄마 아빠도 그림 그리면서 너희 키우고 살았잖니. 힘들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 해. 엄마에게 시범으로 보여줘 봐.”
아이는 웃겼고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쓰라릴까?
“엄마 놀라게 하지 말고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연락하고 와라.”
친정엄마는 말했다. 다시
서울에 갔을 때는 친정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단 사실이 끊이지 않고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다시 엄마를 놀라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