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훅 얼굴로 끼쳐 오르는 밥을 주걱으로 뒤집으며
남편을 불렀다.
“밥 먹어!”
콩자반을 작은
종지에, 김치를 썰어 큰 종지에 담으며
“밥 먹으라니까~”
인기척은 나는데 오지 않는다. 김을 썰어 접시에 담고, 끓고 있는 된장 뚝배기를 식탁에 놓으며
“밥 안 먹어~”
남편은 된장 뚝배기 뚜껑을 열더니 ‘꽝~’ 내려놓으며
“요리를 한 것도 아닌데 왜 큰소리치고 난리야.”
“난리, 몇 번이나 불러야 올 건데? 꼭 불러야만 와. 한 번이라도
먼저 와서 도와주면 안 돼? 요리 좋아하네. 닭고기를 먹나,
돼지고기를 먹나! 먹을 줄 아는 게 있어야 요리를 하지.”
“뭘 한 게 있다고 큰 소리야.”
나는 밥을 푸다가 주걱으로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과연 결혼
27년 동안 내가 뭘 했지? 그러고 보니 뚜렷하게 한 것이 없다. 뭔가 한다고 바쁘기는 했는데 한 것이라고는 밥, 빨래 그리고 청소뿐이 생각이 안 난다.
친구들은 장사해서 돈을 벌고 또 다른 친구는 유명한 화가로, 의사도 되고,
교수도 됐는데. 과연 나는 뭘 한 건가? 이이
둘 키운 것은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다. 굳이 나만 잘 키웠다고 할 수도 없다.
남편 말이 맞다. 난 한 것이 없다. 아무것도.
이 나이 먹도록. 뭔가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쫓아가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꽉 끌어안고
있다가 놓치고만 빈손을 들여다보는 듯 허무했다. 밤새 잠을 설쳤다. 잠이 들었는가 하면 ‘뭘 한 게 있느냐?’라는 남편의
말이 떠오르며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엄마 침대 속에 기어들어 엄마 냄새를 맡으며 마냥
뒹굴던 시절이 떠올랐다. 햇빛이 쏟아지는 창가 쪽에서
엿장수의 가위 소리 그리고 채소 장사, 생선 장사의 ‘싱싱한 고등어,
꽁치 왔어요~.’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밥할 걱정 없던 편안한 시절이.
흥정하던 떠들썩한 소리가 작아져 멀어지면 깊은 잠에 푹 빠져들었던,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골목 끝에 있는 낡은 벽돌 건물 목욕탕을 나와 좁은
길을 지나 큰 길가로 나섰다. 상쾌한 바람에 얼굴을 내맡기고
콧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때 수건으로 세게 밀어 벌게진 얼굴을 거울에 비추며 화장을 짙게 해본다.
이 옷 저 옷을 죄다 꺼내 입어보며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간이 없다.
옷더미에 쌓인 방을 뒤로하고 가장 높은 구두를 찾아 신는다. 시작하기도 끝내기도
어정쩡한 오후 3시, 저동에 있는 영락교회 앞 애플카페에 들어선다.
내가 기다리는 남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다 이미 어두워진 밖으로 나왔다. 새로 산 높은 구두가 발뒤꿈치를 꾹꾹 찌른다.
슬픔으로 온몸이 바르르 떨린다. ‘이상하지 난 결혼을 분명히 했고 남편도 있었는데.
왜 싱글로 남자를 애타게 기다렸던 것일까?’ 내가 다시 혼자가 됐단 말인가!
놀라 눈을 번쩍 뜨니 남편은 옆에 누워 코를 늘어지게
골고 있었다. 눈시울을 적시며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니 어제 싸우느라 걷지 않은
하얀 빨래가 바람에 휘날리며 나에게 손짓한다.
긴 한숨을 쉬며 김이 훅 끼쳐 오르는 밥을 주걱으로 푸며 남편을 상냥하게 불렀다.
긴 한숨을 쉬며 김이 훅 끼쳐 오르는 밥을 주걱으로 푸며 남편을 상냥하게 불렀다.
“여보, 밥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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