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타,
타타타.’ 새벽에 군인들의 뛰는 군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탓탓탓, 탓탓탓.’ 소리는 더욱 커지며 가까이 오고 있다. 그리고 뭔가 뜨거운 것이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갓 떠오르는 주황색을 휘두른 붉은 태양이 창밖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불이야.
불.”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났다. 2층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나오라고 아우성이다. 문 쪽을 돌아보니 복도에서
방 쪽으로 시뻘건 불길이 타들어 오고 있었다. 잠에 빠진 석 달 된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외투로 감싸 안고 속옷 바람으로 부리나케 밖을 향해 뛰었다. 1988년 겨울,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자랑하러 서울에 갔다가 생긴 일이다.
아이를 안고 덜덜 떨며 친정집이 타들어 가는 것을 사람들 틈에 서서 보는 내 다리는 타다 무너진 나무토막처럼 힘이 빠졌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가까이에 있는 아버지에게 달렸다. 70이 되신 아버지께 어찌 말을 해야 하나, 혹시라도 놀라서 쓰러지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아버지~”
새벽에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들어서는 나를 보는 아버지는 벌써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느끼신 듯했다.
“아버지 불났어. 불!”
“애는 어디에?”
“맡기고 왔어요.”
“그럼 됐다.”
두꺼운 외투 지퍼를 천천히 올리고, 모자를 쓰고 그리고는 장갑을 손가락 하나하나 확인하듯이 끼셨다.
“아버지 빨리, 집이 다 타고 있어, 빨리 가요.”
“서두를 것 없다. 내가 간다고 탈 집이 덜 타냐, 이럴 때일수록 서두르면 안 된다. 울지마라 아침부터 울기는.”
건물은 골조만 남고 시꺼멓게 다 탔다. 물길에 얼어붙은 허연 고드름과 질퍽한 바닥이 마치 어둡고 시커먼 동굴 안을 들여다보는 듯 섬뜩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이 든 아버지의 초체한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화재 보험회사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의 구두가 더러워질까 봐 나이키 새 운동화와 목장갑을 준비하셔서 건네줬다. 하지만 결과는 보상금을 거의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보험회사라는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판정기준이라 아버지도 별 기대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버지 이제 어떡해?”
“너는 아이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가라. 네가 이곳에 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너는 네 자리로 가서 열심히 사는 게 아비를 도와주는 거다.”
아버지는 불난 자리에 다시 집을 지었다.
“아버지 그때 그렇게 집이 불에 타고 있는데 어떻게 모자와 장갑을 천천히 쓰고 끼며 서두르지 않았어요?”
“아버지 그때 그렇게 집이 불에 타고 있는데 어떻게 모자와 장갑을 천천히 쓰고 끼며 서두르지 않았어요?”
훗날 물어봤다.
“천정에서 무너져 내리는 불똥이 대머리에 튈까 봐 그랬다.”
하시며 웃으신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불행한 일이 너를 항상 기다린다. 그렇다고 뭐 그렇게 낙담하지는 마라. 행복이 코너에서 또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런데 행복하다고 지나치게 좋아해서도 안 된다. 불행은 또 다른 코너에서 너를 또 기다린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불행한 일이 너를 항상 기다린다. 그렇다고 뭐 그렇게 낙담하지는 마라. 행복이 코너에서 또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런데 행복하다고 지나치게 좋아해서도 안 된다. 불행은 또 다른 코너에서 너를 또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