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갈수록 아버지를 어쩌면 똑 닮니. 말하는 것도 똑같네!”
한국에 나갈 때마다 친정아버지는 나와 언니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지금부터 돈은 내가 다 될 테니 너희는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싸우지 말고 즐겁게 여행하자.”
그러나 사소한 말다툼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삼대독자, 별 볼 일 없는 아들을 두신 우리 아버지.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자식 잘못 키운 죄인이 뭐 할 말이 있냐.”
의기소침해 한다. 그러나 본인이 반대한 결혼을 고집한 언니가 한마디 할라치면
“그러는 너는, 그래 네 아들 키 커서 좋겠다.”
언니의 아들, 본인의 외손자도 별 볼 일 없다며 한마디 내뱉으신다.
“이 늙은 아비는 너 여행 데리고 다니며 맛있는 것 사주는데 넌 돈 벌어서 하나님께는 열심히 바치면서 어째 내게는 아무것도 없냐? 하나님께 공들이는 것 십 분의 일만이라도 나에게도 해봐라.”
잘 참는 언니도 종교 얘기엔 발끈해서
“그러는 아버지는 왜?”
하려다 꾹 참는다.
키 작은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뭐가 그리 급했는지 결혼부터 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맞은 신랑은 키 크고 잘생겼다. 다행히 조카들은 형부를 닮아 키가 크고 인물이 훤하다. 반대한 결혼이라 아버지는 달갑지 않은 듯
“키 커 봐 짜 올려다보느라 불편만 하지 어디 쓸모 있냐.”
우리 형제 모두 미국에 왔다. 언니는 맏딸이라는 책임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오겠다고 기다리다 젊은 시기를 놓쳤다. 언니보다 더 건강하고 생활력이 강한 친정아버지는
“오히려 네가 잘사는 나라 미국에 가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거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가서 잘살아라.”
비수 같은 한마디에 언니도 한국을 떠났다.
나이는 언니이긴 하지만 미국생활에서는 내가 언니다. 처음 미국 와 자리 잡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보고 부탁하니 잘하다가도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성질을 내곤 했다.
“언니! 그렇게 새벽기도까지 열심히 다니며 믿는 하나님은 어디 가고 왜 허구한 날 나만 붙잡고 늘어지는 거야. 하나님보고 해달라고 기도해.”
“넌 어쩌면 그렇게 아버지처럼 말하니.”
언니가 울먹이면 마음이 약해진 나는
“알았어. 알았다니까.”
아버지의 독설을 피해 미국에 온 언니는 나에게 또 걸렸다. 언니의 운명도 안 됐다 싶어 도와주다가도 아버지를 빼다박은 내 성질이 어디 갈까. 언니는 나의 독설로 힘들고 나는 언니의 이민생활 자리 잡는 것 도와주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언니가 있어 좋다. 돌아가신 엄마를 보는듯하다. 언니가 해주는 음식 맛은 엄마의 음식 맛과 같다. 내가 아무리 성질을 부리고 난리를 쳐도 엄마처럼 다 참는다.
언니와 함께 올려다보는 한적한 시골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지며 우리 자매를 반긴다. 이렇게 언니를 데리고 여행하는 것으로 나의 죄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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