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뭐 하고 지냈어?"
후배에게 물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 가는 페리를 타고 서너 번 왔다 갔다 하며 혼자 보냈어요.”
후배의 외로움에 찌든 대답에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쓰렸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나는 한인이 없는 뉴욕 근교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영어가 시원찮아 친구 사귀는 것도 싶지 않았다. 차도 없었다. 한적한 길을 걷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들판에 마구 자란 강아지풀뿐이었다. 뭔가 사람과 가깝게 느껴지는 풀을 볼에 대고 문지르며 위로 삼았다.
학교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은행에 한국인처럼 생긴 남자가 있었다. 한국 사람이 그리울 때면 그곳까지 걸어가 윈도 안에서 일하는 그 사람을 슬쩍 들여다보곤 했다.
외로움은 병이었다. 누군가 몇 블록만 가면 한국 사람이 있다고 했다. 단숨에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자다 깨어난 동양 남자가 나왔다. 싱가포르 사람이었다. 미국인들은 싱가포르 사람과 한국 사람도 구별 못 한단 말인가! 또 다른 누군가가 기차를 타고 어찌어찌 가면 나처럼 생긴 사람이 많다고 했다. 찾아간 곳이 플러싱이다. 메인 스트릿 사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온종일 서 있었다. 사람들은 배시시 웃고 있는 나의 눈길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피해갔다.
기차를 타고 돌아와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관 뚜껑을 열고 들어가 눕는 듯했지만, 플러싱이 있어 한나절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했다. 그 당시 난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모도, 능력도 중요하지 않고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만을 바랬다.
후배에게 전화했다.
“사람이 있는데
한번 만나볼래.”
“어떤 사람인데요?”
“미국 남잔데.”
반응이 없다.
“왜?, 만나기 싫어?”
“전 영어도 하기
싫고 한식을 먹지 못하면 못살아요.”
내가 그 옛날에 영어를 조금이라도 했으면 미국 사람도 마다치 않았을 텐데. 후배는 아직도 견딜만한가 보다. “알았어.
내가 그 옛날에 영어를 조금이라도 했으면 미국 사람도 마다치 않았을 텐데. 후배는 아직도 견딜만한가 보다. “알았어.
한국 남자 있으면 연락할게."
요즈음 미국에 온 한인 중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물질적으로도 풍부하고, 한류가 물밀 듯 밀려와 예전에 온 사람들만큼은 외롭지도, 아쉽지도 않은가 보다. 오히려 한인 젊은 남녀가 없던 그 옛날엔 짝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한국에서 젊은 사람이 온다면 공항까지도 달려 나가고들 했다는데. 이젠 멋 옛날 일인가보다.
요즈음 미국에 온 한인 중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물질적으로도 풍부하고, 한류가 물밀 듯 밀려와 예전에 온 사람들만큼은 외롭지도, 아쉽지도 않은가 보다. 오히려 한인 젊은 남녀가 없던 그 옛날엔 짝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한국에서 젊은 사람이 온다면 공항까지도 달려 나가고들 했다는데. 이젠 멋 옛날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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