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두들겨도 대답이 없다. 돌아서려는데 슬리퍼 끄는 소리 그리고는 열쇠 따는 소리가 들린다.
열린 문틈 사이로 마리아와 평생을 같이 한 재봉틀이 보인다. 그녀의 말대로100년이 넘은 재봉틀은 90이 갓 넘은 그녀보다 훨씬 성능이 좋다며 재봉틀을 자랑하는지, 아니면 그녀의 늙음을 아쉬워하는지, 알지 못할 푸념을 한다.
마리아와 나는 항상 거의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혼동하여 말하곤 한다.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미래가 되다 결국엔 죽음을 말하는 씁쓸한 대화가 계속된다.
그녀는 1차 대전 후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오스트리아의 시골 산티아고를 떠나 배를 타고 미국에 왔다. 남편 토니는 부둣가에서 배 고치는 일로, 그녀는 맨해튼 28가, 바느질 공장에서 일했다.
그녀는 오직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돈을 모았다. 돈이 모이자 고향에 찾아갔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또 돌아갈까 하여 찾아가니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형제, 일가친척 그리고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다. 한 해 두 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미루던 부부는 끝내 아는 사람이 없는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젊었었을 때 마리아 부부는 여름마다 코니아일랜드를 즐겨 가곤 했다. 토니는 바닷물에 들어가 피서객이 남기고 간 목걸이, 반지 등의 쥬얼리를 주워 부인에게 주는 재미로 여름을 보냈다. 어느 날, 도둑이 들어와 몇십 년 모아놓은 쥬얼리를 모두 훔쳐 갔다며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그녀의 하소연 속에서 물건의 가치에 대해 아쉬움보다는 부부의 추억의 한 부분이 없어진 서운함이 서려 있다.
그녀는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수많은 날을 보냈다. 1930년 당시 뉴욕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 거의 변한 것이 없지만, 자신만이 늙어 변했다며 되뇐다. 결국, 자신은 죽어도 맨해튼은 건재할 것이라며 늙어감을 아쉬워한다.
수양딸이 와서 머리를 잘라 주었다고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다른 여느 날과도 마찬가지로 그녀가 어릴 적 뛰어놀던 오스트리아의 산티아고를 그리워하며 죽어서 그곳에 묻히기를 바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멀리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멀어져 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그녀가 미국에 올 때는 14일 이 걸렸는데 8시간이면 고향에 갈 수 있다고 좋아한다. 지금은 편지도 픽업할 수 없는 노인이 되어 누군가가 가져다주기를 기다리지만, 가끔 얼굴에 홍조를 띠며 내년엔 꼭 고향에 갈 거란다.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리아도 언젠가는 그녀의 남편 토니 곁으로 갈 것이다. 우리가 왔던 곳으로. 우리네 인생은 소중하고 작은 그리고 향기로운 덩어리로 왔다가 무겁고 차가운 죽음으로 가는가 보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 있었던 그 어느 때보다 편히 쉬다 어리고 예쁜 새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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