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작은 얼굴, 동그란 눈과 수줍은 듯 웃는 입. 긴 머리를 뒤로 말아 올린 단아한 모습의 서빙하는 동양 여자를 봤다. 한국 사람일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키, 가는 몸매에 걸친 흰 셔츠 위에 검은 조끼와 검은 바지를 입은 모습이 무척 예쁘다. 아마 24살?
그녀에게 여러 날 서빙 받으며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다. 외국 사람들이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먼저 묻지 않는다. 식당에서 우리에게 서빙하고 돌아서 가던 그녀가 보스인 승무원과 우리 부부를 힐끔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보스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었다. “뉴욕에서 왔어요.”라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외국인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사람 봐가며 ‘브루클린에서 왔다. 아니면 농담으로 엄마 뱃속에서 왔다.’로 얼버무린다. 코리언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군 복무를 했다는 둥 북한에서 왔냐라든가.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했다.’라며 이야기가 가래떡 늘어지듯 길어지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이에요?” 그가 다시 물었다. “아니요.” “그럼, 코리언?" “그래요.”
“안녕하세요." 그가 한국말로 인사했다. 한국인 발음이다.
“너야말로 한국 사람이구나.” 하며 내가 깔깔 웃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왔단다.
“한국분이라면서요. 반가워요.”
다음 날 저녁 식당에서 그녀가 우리에게 한국말로 물었다.
“그동안 크루즈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은 처음 만나요. 반가워요.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와서?” “서울에서 관광과를 나와 지원해서 한 달 전에 발령받고 크루즈를 탔어요.”
부모 친구 떠나 타향에서 흔들리는 배를 타고 음식과 주위 사람들에게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6개월에 한 번 한국에 갈 수 있고 두 달에 한 번 배 밖으로 나갔다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언뜻 들었다.
70년대 초 ‘우리도 잘 살아보세.’ 요란한 구호가 귀에 익던 시절 마이애미를 근거지로 운항하든 크루즈에서 승무원으로 일했던 시아버지가 생각났다. 배에서 내려 마이애미를 둘러본 시아버지는 휴가 때 서울에 돌아와 이민 신청을 해서 가족 모두를 초청했다. 아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집 떠나기 싫어하는 남편이 그나마 크루즈는 타는 것 같다. 남편은 거의 밥 먹을 때만 나오고 케빈에서 출렁이는 파도를 보면서 뉴욕에서 하던 작업을 계속하듯 종이 위에 볼펜으로 손을 놀린다. 일제 식민지 시절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 했던 아버지에 대한 회한 아니면 고마움이 아닐까?
그녀 인물이 다른 승무원보다 월등하다. 얼굴에 칼 된 흔적도 없는 자연 미인이다. 몸매도 곱고 물 찬 제비 같다. 배우가 돼도 될만한 인물이다. 단 다른 서빙 승무원들은 활짝 웃는데 그녀는 조용히 조곤조곤 말하고 수줍은 눈을 간신히 뜨는 여린 모습이 안쓰럽다. 승객들에게 잘 웃고 방긋방긋 인사해야 팁을 많이 받을 텐데. 정이 갔다. 안아주고 싶었다. 배에서 내리기 전날 저녁, 여행 중 쓰고 남은 현찰을 그녀의 조끼 주머니에 넣어주며 꽉 껴안았다. 우리 두 눈에 눈물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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