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니?”
“그냥 앉아 있어.” 아니면 “누워 있어.”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내가 늘 하는 대답이다. 그림을 그리다 안되면 구상한다고 천장을 보고 누워있다. 글을 쓰다 안되면 책이라도 보면 도움이 될까 하여 소파에 누워 책을 뒤적거리기 때문에 대답은 거의 똑같다. 이렇게 별 볼일 없이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바쁘지도 않은 내가 전화 한 통화 안 하는 것을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눈치 없이 그것도 길게 열심히 전화해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하지 않게 됐다.
친구들 모두가 바삐 장사한다. 이상하게 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없던 손님이 들어와 바빠진다. 금전등록기 찍는 소리, 돈 통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간간이 손님들과 대화하는 소리도 들린다. 한가한 손님이 왔는지 대화가 끝이 없이 길어지면 난 슬그머니 수화기를 내려놓곤 했다.
세탁소 하는 친구는 세탁물을 찾아서 돈 계산을 해야 하고, 포토샵 하는 친구는 여권 사진을 찍겠다는 손님이 들어왔다. 리커 스토어 하는 친구도 손님이 들어왔다고 잠깐 기다리란다. 그리고 네일 살롱 하는 친구는 손님과의 약속 시각이 됐다며 나중에 얘기하잔다. 이렇게 친구들은 돈 버느라 바쁜데 난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전화나 해대니.
그러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쏘아댔다. “너 왜 이렇게 철이 없니. 돈 안 벌어?”
며칠 전 가게를 셋이나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친구다. 가끔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갈 때 나를 옆에 태우고 그동안 밀린 사연을 줄줄이 늘어놓는 사이다. 운전하는 친구를 옆에 앉아 자세히 보니 눈은 피곤해서 충혈되었고 살이 빠져 예쁘던 얼굴에 주름살도 많이 생겼다.
종업원이 며칠 출근을 하지않아 찾아가니 뇌출혈로 쓰러져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단다. 마흔두 살의 중국인 종업원은 돈을 벌어 중국으로 보내야 하는 데 요즈음 손님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며 괴로워했단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데…이젠 나도 쉬고 싶다.”
친구는 한숨을 쉬었다.
“쉬면 되잖아.”
나는 철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게 그렇게 네 말처럼 쉬우냐? 벌려 놓은 게 많은데.”
‘너 왜 이렇게 철이 없니.’ 하는 소리가 친구의 입에서 나오기 전에 어두워져 가는 창밖을 내다보며 입을 꼭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