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이름을 보며 조상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얼마나 살다 죽었는지를 추측하며 묘지를 산책한다. 1700년에 태어난 묘비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납골당 창문의 유리 먼지를 닦고 안을 들여다봤다. 관을 넣을 수 있는 서랍들이 포개져 쌓여있다.
누군가 죽어서 관이 들어 있는 서랍에는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연도가 적혀져 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으면 들어갈 빈 서랍도 있다.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이 어둡고 써늘한 납골당 서랍 안으로는 들어가기 싫다.
공원묘지를 걷다 보면 어느 중세기의 한 마을에 들어선 느낌이다. 중앙에 망자를 위로하기 위한 교회를 중심으로 커다란 납골당들이 그리고 작은 납골당들이 줄지어있다. 조각을 새긴 높은 비석이 그 뒤를 따라 내려오다 작은 비석들로 이어진다. BQE 근처 가까이 갈수록 아주 작은 비석들이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마도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는 높은 묘지 자리는 비싸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아직 한국 이름이 쓰인 묘비는 보지 못했다.
돈 많은 사람은 죽어서도 마치 저택처럼 육중한 돌로 지어진 납골당에 뽐내듯이 묻혀있다. 돈 없이 죽은 사람은 고속도로 길가에 버려지듯이 묻혀있다. 죽은 영혼들이 햇살이 밝은 대낮에는 조용히 숨어있다가 밤이 깊어지면 우리가 사는 모습처럼 나와서 움직일 것만 같다. 돈이 많아 죽은 영혼들은 화려한 파티를 하며 즐길 것이고, 돈 없이 죽은 혼들은 돈 많은 혼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것 같은 커뮤니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칼바리 공원묘지에는 가톨릭계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잠들어있다. 몇 년 전 우리 동네에 사는 이탈리아 친구가 어린 딸을 잃었다. 딸을 먼 곳에 묻는 게 싫어 집 가까이에 있는 이 묘지에 묻었다. 묘지 자리가 너무 비싸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집 가까이에 묘지를 두고 산책하듯 자주 드나든다. 무슨 날에만 조상 묘지를 찾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르다. 죽은 영혼과의 관계가 우리처럼 멀게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죽음은 끝이요 그리고 영원한 휴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칼바리 묘지에서 보는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연장이요, 투쟁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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