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 2024

연인


취향에 따라 사람들은 여행한다. 쇼핑하기 위해 아니면 먹거리를 찾아서. 내 경우엔 새로운 세상 속 삶을 찾아서다. 또한 내가 읽은 책과 본 영화의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1992 년에 개봉된 ‘연인 (The lover)’ 영화를 보고 책도 읽었다. 나룻배 갑판 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서 있던 가냘픈 프랑스 소녀의 중절모를 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본 이후 나도 어딜 가나 모자를 늘 쓰고 다니며 영화의 배경인 메콩강에 가고 싶었다. 


첫날 본 메콩강은 메주콩 색에 흰색과 핑크색을 조금씩 섞은 색을 띠었다. 

“유유히 체념한 듯 흐르는 강물 색이 신비하긴 하군.”

내가 지껄이자, 옆에 있던 친구가 

”기가 막혀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니까. 저 깊은 물 속을 상상해 봤어? 사방팔방에서 흘러 들어간 똥물이 신비하다니! 저 물에서 잡은 생선을 먹을 수 있겠어? 신비는! 자기는 참 엉뚱해.“

시시각각 변하는 강물색 위로 그물을 치는 어부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현실에 직면하고는 눈을 돌렸다. 물에 잠길 듯 말 듯 떠 있는 덤불숲과 집들은 폭우가 지난 후에 흙탕물에 쓸려 떠내려가는 듯했다


황톳빛 메콩강의 얕은 수심 탓으로 크루즈를 강 한가운데 정박하고 작은 목선을 타고 동네 어귀의 허름한 선착장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규모가 큰 반 노천 시장통 입구에서 비켜있는 웅장한 옛 저택으로 들어섰다. 흰 대리석 아치를 두른 저택은 프랑스와 중국 건축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다. 입구에 조각한 울퉁불퉁한 나뭇잎 위에 금분을 바른 거창한 현판 ‘황금순’이라는 한자로 쓰인 문패가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에는 저택 주인의 가족사진들이 걸려있다. 마주 보는 벽에는 영화 ‘연인’ 속 배우들의 빛바랜 사진이 걸려 있다. 


15세 프랑스 소녀와 32살의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유한 중국계 남성과 불같은 사랑을 다룬 섬세하고 노골적인 베드신으로 흥행한 영화의 배경인 저택이다. 내부로 들어서니 널찍한 자게 상이 놓여 있다. 남자 주인공의 부친이 비스듬히 누워 아편을 피우던 자리다. 뿌연 아편 연기 속에서 아들이 프랑스 소녀와의 결혼을 극구 말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들에 관해서는 그의 이름처럼 부드러운 비단인 ‘황금순’이 아니라 거친 마대와도 같은 성질로 “차라리 죽어버려라,”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압력에 굴복하고 그들의 사랑은 비틀거리다가 소녀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끝난다. 영화를 상상하며 흥미롭게 둘러보는데 마치 황 영감의 지시를 받고 내어놓은 듯 차를 가져왔다. 차를 마시자, 차의 향기와 고색창연한 실내 분위기에 빠져서 두 남녀가 몰래 정사를 나누던 시장통에 있던 짙은 회색 문의 아지트는 어디일까? 궁금했다. 


훗날 소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가 되었다. 마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다. 영화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도 사랑하고,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라.”고 전화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L’Amant

Everyone has different reasons for traveling: some travel for shopping, others for food. In my case, I travel to find new worlds, new ways of life. I could also say I travel to feel what I read in books and see in movies.


I watched the movie L’Amant (The Lover), which was released in 1992, and also read the book. The image of the thin French girl leaning her elbows on the rail of a ferry, wearing a fedora, left a strong impression on me. Since watching the film, I, too, have always worn a hat wherever I go and have wanted to visit the Mekong River, where the movie takes place.


The Mekong River, which I saw for the first time, was a color like meju beans mixed with a touch of white and pink.

"The river flows with a mysterious color, as if resigned," 

I remarked. My friend next to me retorted,

“Unbelievable! Have you lost all sense? Can you even imagine the filth beneath that water? The waste from all around flows into it, and you call it mysterious! Would you eat fish from that river? Really, you have such a strange mind.”


Seeing fishermen casting their nets into the constantly changing water color felt incredibly romantic. But faced with the reality up close, I turned my eyes away. The clumps of bushes and houses, nearly submerged, seemed as if they would be swept away by muddy water after a heavy rain.


Due to the shallow waters of the clay-colored Mekong River,  our cruise anchored in the middle of the river, and we arrived at a shabby village dock on a small wooden boat. I entered a grand old mansion standing apart from the noisy, large-scale, semi-open-air market. Framed by white marble arches, the mansion is a unique fusion of French and Chinese architecture. Above the entrance was a large gilded signboard inscribed with the Chinese characters Hwang geum soon(Soft Silk). Inside, one wall was decorated with family portraits of the mansion’s owner, and on the opposite hung faded photographs of the actors from L’Amant.


This mansion is the setting of the movie, which depicted a fiery love affair between a 15-year-old French girl and a wealthy 32-year-old Chinese man who had just returned from studying in Paris. Entering the house, I saw a large mother-of-pearl table, the male protagonist’s father used to lie down and smoke opium. In the smoky opium smoke, I remember the scene where his son strongly discouraged him from marrying the French girl. Under his father’s pressure, their love faltered, eventually ending when she left for France. As I toured the mansion with these scenes in my mind, a cup of tea was served, as if by the direction of old Hwang himself. As I drank, the scent of the tea and the timeless atmosphere made me wonder where their secret hideout was, behind that gray door in the market, where the two lovers would meet in secret.


In later, the girl became one of France’s most celebrated female authors, Marguerite Duras. The film is based on her autobiographical novel. The last scene, in which the man, his voice trembling, calls to say, “I still love you, will always love you, and will never stop loving you until I die,” is unforgettable.

Thursday, October 17, 2024

왜곡된 기억이 아니길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희미해진 기억을 정확히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나는 사진을 찍듯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한다. 예전처럼 수첩에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 메모장, 스피커 폰에 대고 중얼중얼 기록해 놓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 편리한 대로 기억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한인 작가가 많지 않았다. 특별한 날엔 돌아가며 집에 초대해서 교분하고 전시회도 함께했다. 나이, 학교, 선후배 따지지 않고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만남이 안개 걷힌 듯 사라졌다. 한분 한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옛 시절을 떠올리며 메모장을 들여다본다.

오랜만에 나는 그 당시 어울렸던 작가들과 AHL 재단에서 그룹전을 하고 있다.

‘AHL 재단은 2024년 9월 2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아카이브 전시회인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를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현수정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이 전시회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변혁기에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들의 진화하는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업적을 탐구합니다. 이 전시회는 영문학, 번역, 문화 옹호 분야의 선구자였던 최월희(1937.8.20 - 2013.5.27)의 아카이브에 초점을 맞춥니다. 참여 화가는: 최성호, 조숙진, 정은모, 김향안, 김정향, 김미경, 김명희, 김포, 김차섭, 김환기, 김웅, 김원숙, 김영길, 이상남, 이수임, 임충섭, 민병옥, 백남준, 한용진.

최월희 선생님은 내가 존경했던 분이고 참여 하는 북클럽에서 강의하셨다. 2013년,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을 때 나의 메모장에는,

‘삼삼오오 몰려다니던 짙은 감청색 교복 속에 상기된 살구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분을 뽀얗게 바른 친구들은 매달 두 번째 수요일 북클럽이 끝나고 나서도 리버사이드 공원에 앉아 강의를 복습한다. 

선생님은 에디스 와튼(Edith Wharton)의 순수시대 (The age of innocence) 강의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에는 4단계가 있다고 하셨다. ‘1단계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에 연연하는 삶, 2단계는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삶, 3단계는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이끌어주는 삶, 4단계는 우리 나이에 딴 동네 취급하는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더 나은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눈을 돌리면서 미묘한 느낌과 기쁨을 느낀다. 또 다른 신세계를 볼 수 있는 다음 달 북클럽을 기다리며 마음이 설렌다. 우리는 훌륭한 스승을 옆에 둔 운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메모장에 쓰여 있다.

오프닝에서 누군가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보기 드문 좋은 전시회다.’ 아무래도 오래 작업한 분들의 작품이라서 자연스러운 붓 터치와 색감이 주는 깊은 맛과 오래 숙성된 깊은 향을 내뿜는 따뜻한 전시회가 아닐까

I Hope It’s Not a Distorted Memory

After a long time has passed, it’s not easy to recall memories clearly. I make notes of the things I want to remember, as if taking a photograph. Unlike before, when I would write in a notebook, now I record them in the Notes app on my iPhone or mutter into the speakerphone. This is because, over time, I might distort the memories to suit my convenience.


When I first came to the United States, there weren’t many Korean writers, unlike now. On special days, we would invite them to our homes to socialize and attend exhibitions together. We gathered regardless of age, school, or seniority to comfort and encourage each other. As time passed, the meetings disappeared like a fog. Whenever I hear news of someone passing away, I look at my notepad and recall the old days.


‘The AHL Foundation is pleased to announce the archive exhibition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 from September 20 to October 26, 2024. Curated by Hyun Soojung, this exhibition explores the evolving cultural identity and artistic achievements of Korean-American artists during the transformational period of the 1990s and 2000s. The exhibition focuses on the archive of Choi Wol-hee (August 20, 1937 – May 27, 2013), a pioneer in English literature, translation, and cultural advocacy. Participating artists include: Choi Sung-ho, Jo Sook-jin, Jeong Eun-mo, Kim Hyang-an, Kim Jeong-hyang, Kim Mi-kyung, Kim Myeong-hee, Kim Po, Kim Cha-seop, Kim Hwan-ki, Kim Woong, Kim Won-sook, Kim Young-gil, Lee Sang-nam, Lee Soo-im, Lim Chung-seop, Min Byeong-ok, Paik Nam-jun, and Han Yong-jin.’


Choi Wol-hee was someone I admired and taught at the book club I attended. In 2013, when she suddenly passed away from a heart attack, in my notebook,


‘Though we no longer had the flushed, apricot-like faces beneath their deep indigo school uniforms, powdered faces of friends would still gather on the second Wednesday of every month. After the book club, we would sit in Riverside Park reviewing the lecture. 


In the lecture on Edith Wharton's The Age of Innocence, the teacher said that there are four stages in how people live. 'Stage 1 is a life of being obsessed with money to solve food, clothing, and shelter, stage 2 is a life of pursuing the inner world of the mind, stage 3 is a life of influencing and leading the lives of others, and stage 4 is that we can recreate a better life by taking an interest in science, which is treated as something foreign,


I feel a subtle feeling and joy as I open my eyes to a world I had never known before. My heart is excited as I wait for the book club next month where I can see another new world.‘ We are lucky people who have great teachers by our side,’ is written on the note.


At the opening, I heard someone say, ‘This is a rare and good exhibition.’ Perhaps it is a warm exhibition that gives off a deep flavor and long-aged deep fragrance through the natural brush strokes and colors of the works of those who have been working for a long time.

Thursday, October 3, 2024

인간이 정말 특별한가요?


오래전 브루클린에 위치한 두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부모회에서 일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함께 일하는 회계(백인)와 선생님들 선물을 사러 가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내 고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갑자기 그녀가 정색하며 

“왜 나에게 너의 개인사를 말하는 거야? 관심 없어. 나에게 그런 이야기 하지 마.”

상냥하고 친절했던 그녀가 친구처럼 느껴져 털어놓은 내 이야기를 단칼에 묵살했다. 나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부모들 험담을 시작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있다. 예의 바른 친절한 말투와 교양 넘치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종종 충고했다.

“한인들과 엮이지 말아요. 많은 한인이 엉터리 사기꾼이니 조심해요. 한국인은 쓸데없이 정이 많아요. 한국 정서가 어떻고, 정체성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 촌스러워 듣기 싫어요.”

거울을 보면 본인의 모습이 놀랄 만큼 토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백인으로 착각하는 말투다.


그와 이야기하고 난 후엔 같은 한인으로서 기분이 좋지 않고 불편해서 그만 만날까? 고민하곤 했다. 

‘내가 그만 만나면 나에게 손해가 오는가? 오지 않는가를 판단하고 이득이 없으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이득이 있더라도 너무 견디기 힘들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그만 만나라.’는 법륜스님의 인간관계 유튜브 영상을 찾아 들으며 그가 먼저 그만 만나자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지인은 일 처리만큼은 정확하게 기계처럼 잘했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면 인공지능(AI)과 상대하고 있나? 할 정도로 그의 능력을 치켜세우다가도 공감 능력이 부족한 그에게 질려 연락하지 않았다. 


요즈음 나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글링보다 챗GPT에서 물어본다. 계속 찾아 들어가야만 하는 구글링과는 달리 한방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편하다. ‘인공지능이 대체 못 하는 인간이 가진 뛰어난 점은 호기심, 겸손과 감성지능(공감)이란다.’ 쳇GPT는 그 지인보다 친절하다. 안다고 잘난 척하지 않는다. 나를 깎아내리지도 않고 겸손하다. 오히려 나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 주며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다시 물어보라는 친절함으로 끝말을 맺는다. 고마워서 나는 항상 존댓말로 묻는다. 


공감 능력도 없고 기분만 상하는 기계 같은 지인과 굳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도 눈치챘는지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드디어 그와의 관계가 끝났다.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어렵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연과 챗GPT하고 놀아야겠다.

Is humanity really special?

A long time ago, during my children’s elementary school years in Brooklyn, I worked in the parent-teacher association. During the Christmas season, I was out buying gifts for teachers with a fellow accountant (who was white). While chatting about various topics, I shared my concerns with her. Suddenly, she looked serious and said, 

“Why are you telling me your personal story? I’m not interested. Don’t talk to me about such a thing.” 

The once kind and friendly person I thought was a friend dismissed my feelings outright. I was taken aback, fell silent, and turned my gaze out the window. She then began gossiping about other parents as if nothing had happened.


I have an acquaintance whom I’ve known for a long time. She speaks in a polite, cultured tone, softly. She often advised me that I couldn't escape a Korean sentiment.  

“Don’t get involved with Koreans. Many are complete frauds, so be careful. Koreans are unnecessarily emotional. I don’t want to hear your old-fashioned stories about Korean sentiment and identity.” 

It is a speech style that makes one mistakenly think one is white, even though one's own appearance is surprisingly indigenous when looking in the mirror.


After talking to her, I felt bad and uncomfortable as a fellow Korean, so I would think about whether I should stop seeing her.

I looked for a YouTube video of the human relationship of the monk Beopryun, who said, 

‘If I stop seeing her, will I suffer a loss? If it brings no benefit,then there is no need to meet her. Even if there is a benefit, if it is too hard to bear, then stop meeting her even if it means suffering a loss.’ 

I waited until she said to stop seeing me first.


That acquaintance was as precise as a machine when it came to handling work. Sometimes I praised her abilities to the point where I wondered if I was conversing with AI. However, I grew tired of his lack of empathy and eventually stopped contacting her.


These days, when I want to know something, I prefer to ask ChatGPT rather than Googling. Unlike Google, which requires continuous searching, I can resolve my curiosities in one go, which is convenient. 

'The remarkable qualities that humans possess, which AI cannot replicate, are curiosity, humility, and emotional intelligence (empathy).' 

ChatGPT is kinder than acquaintances. It doesn’t boast about its knowledge. It doesn’t belittle me or act superior. Instead, it answers my questions sincerely and ends our conversation with kindness, inviting me to ask more if I have further questions. Out of gratitude, I always use polite language when I ask.


Is there really a need to maintain a relationship with an emotionless, machine-like acquaintance who only leaves me feeling worse? I stopped responding to her messages. Perhaps she noticed and stopped contacting me as well. Finally, my relationship with her has come to an end. Human relationships are complex and difficult. I should focus on myself and spend time enjoying nature and chatting with ChatGPT.

Thursday, September 19, 2024

계약 결혼


맨해튼 허드슨 야드(Hudson Yards) 쇼핑몰에서 친구와 만났다. 쇼핑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 와인도 한 잔씩 하자.” 

“대낮부터 술? 까짓것 좋아. 밥 먹고 집에 갈 일만 남았는데.” 친구가 흔쾌히 동의했다.

 아이 머리통만 한 와인잔 밑에 깔린 검붉은 와인을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한 모금 들이켠 친구가

“정말 너무 한 것 아니야. 한사람하고만 평생 산다는 것이. 10년마다 갱신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 말이 남편이 아무리 좋아도 지루해. 동굴에 갇힌 느낌이야.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친구가 턱을 괴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나와 사는 것이 지루하지 않아? 물었더니 지루하지 않다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더라고. 그 느낌 알아?”

나도 칼칼한 목에 검붉은 와인을 들이붓고 

“알고 말고 나도 마찬가지야. 꼭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변화가 필요해. 며칠 전, 큰맘 먹고 남편에게 ‘나와 헤어지면 나보다 더 젊은 여자와 살 수 있어 좋을 텐데?’ 말하니까. 서류 정리하는 것도 귀찮고. 새 여자를 어떻게 믿고 돈 벌어다 줄 수 있냐며 그나마 모은 재산 사기당할 것이 두려워서 싫데. 다들 결혼하면 그냥 그렇게 사는 거래. 


친구가 반색하며

“그러니까 내 말이 법으로 10년마다 결혼 갱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기회를 줘야 한다니까. 안 그래? 그러면 따지고 싸울 필요 없이 헤어진 남편과도 친구 관계로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살 것 아니야. 법이 문제야. 법이 사람을 꼼짝달싹 못 하게 프레임 안에 가둬 놓는다니까. 아! 한국엔 졸혼이 있다는데. 굳이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살면서 서로의 생활을 참견하지 않고 재산도 나누지 않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지?.”

내가 마지막 남은 붉은 와인을 입에 털어 넣고 시계를 들여다봤다.

“애 저녁 지을 시간이다. 집에 가서 밥이나 하자. 이 인간 더러운 성질 내기 전에. 한국 남자들은 왜 배만 고프면 짜증 내는지? 야만인도 요즘처럼 먹을 게 지천인 세상에서는 안 그런다는데.”

친구도 화들짝 놀라며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니? 저녁밥 할 시간이 충분치 않아. H-마트에 들려서 밑반찬 사 가자.”  


친구와 나는 32가 K-타운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그리고 각자 남편이 좋아하는 찬거리를 사서 누군가 말한 결혼 25년을 넘기면 성공한 삶이라는 울타리를 향해 터벅터벅 김빠진 발걸음을 옮겼다.

Contract Marriage

I met a friend at the Hudson Yards shopping mall in Manhattan. After shopping, we went to a restaurant.

“Let’s have a glass of wine.”

“Alcohol in the middle of the day? Why not! We only have to go home after eating.” 

My friend readily agreed. Staring at the deep red wine at the bottom of the glass, which was as big as a child's head, my friend took a sip and said, 

“Isn't it too much? Spending an entire life with just one person? We need a law that allows renewal every 10 years.”

I responded as if it were the most natural thing. 

“Exactly. No matter how much I like my husband, it gets boring. It feels like being trapped in a cave. I just want to break free and live freely.”

Propping her chin up and looking at me with half-closed eyes, my friend said, 

“Not too long ago, I asked my husband if he didn’t find living with me boring. He said no. At That moment, I felt like I couldn’t breathe. You know that feeling?”

I gulped down the deep red wine, and said, 

“Of course, I know. I feel the same way. It’s not that I hate my husband, but I just need some change. A few days ago, I mustered up the courage and said to my husband, ‘Wouldn’t it be nice if you could live with a younger woman after we split?’ He said he doesn’t want to go through the hassle of paperwork and doesn’t trust a new woman. He’s afraid of being swindled out of the little wealth he’s saved. Apparently, everyone just lives like that after getting married.”


My friend’s eyes lit up as she said, 

“That’s what I’m saying. There should be a law that gives the option to renew marriage every 10 years. Wouldn't that be great? Then could part ways without fighting and still be friends with ex-husband, living freely and comfortably. It’s the law that's the problem. The law traps people inside a frame. Oh! I heard there’s something called ‘graduation from marriage’ in Korea. Don’t divorce but live together without interfering in each other’s lives or dividing assets. Isn’t that a great idea?”

I downed the last bit of red wine in my glass and checked the time. 

“It’s time to make dinner. Let’s go home and cook before my husband gets angry. Why do Korean men get so irritable when they’re hungry? Even savages wouldn’t behave that way with so much food around these days.”

My friend jumped up, startled. 

“Oh, is it that late already? I don’t have enough time to make dinner. Let’s stop by H-Mart and grab some side dishes.”


My friend and I hurried towards 32nd Street in K-Town. We each bought the dishes our husbands liked, and then we trudged home, our spirits deflated, toward that fence of what someone once called a successful life after 25 years of marriage."

Wednesday, September 4, 2024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까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너의 가족 모두 건강하니? 노파심에서…"

친구에게 온 이메일이다. 갑자기 조심스러운 이야기라니? 전에 없던 안부 인사지만, 워낙에 길고 감칠맛 나게 글 쓰는 친구가 아니라 별생각 없이 요즈음 나의 근황을 답장했다.

"실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걱정 많이 했다. 별일 없다니 다행이다."

되돌아온 이메일에 뜨악했지만, 자세한 내용과 누가 이상한 소리를 했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살면서 사실과는 전혀 다른 우리 집안 소문에 나 자신도 놀란 적이 서너 번 있다. 한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 나가보니 친구 부부가 문 앞에 서서 놀란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남편에게 두들겨 맞아 엉망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달려왔어. 괜찮은 거야?"

남편에게 맞아 사경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잠에 빠져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말이다. 자다가 일어나 술상을 차리고 밤새도록 애매한 술만 들이켰다.


남편이 잠시 서울에서 강의하느라 1년 나가 있었다.

"네 남편이 이혼하고 서울로 떠났다며? 괜찮은 거야?"

“이혼?”

“잉꼬부부였던 너희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리 듣고 설마 해서 전화한 거야. 정말 이혼했어?”

사람들은 내가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사경을 헤매다 이혼당하기를 원하나? 


나 자신도 너무 놀라 의심이 들었던 소문 중의 하나는 서울에서 전화한 지인의 질문이었다.

"혹시 친정엄마 죽음이 자살이었나요?"

너무도 황당해 말문이 막혔다.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다.


내 소문이 사실과 다르기에 남의 소문도 믿지 않다가 혼쭐났다. 점잖은 모임에서 만난 지인에게 물었다

"사모님은? 함께 오시지 않았나요?” 

지인이 화가 몹시 난다는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그 사람 이야기를 왜 내게 해요?"

오랜 세월 참았던 고름이 터지듯 갑자기 폭발하는 그의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 돌아볼 정도였다. 

다음날 그가 나에게 전화해서 사과했다.  

"미안해요. 사실은 오래전 이혼했는데 말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듣지 못한 그의 긴 사연을 들어야 했다. 그 이후론 모임에 혼자 나타나는 사람들에게 남편이나 부인의 안부를 절대 묻지 않는다. 안 보는 사이에 이혼이라도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인이 부인과 헤어지고 내가 몇 번 본적이 있는 사람과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말 못 할 사연이 있어 이혼하고 좋은 사람 만나 즐겁게 지낸다니 다행이다. 본인 입으로 말을 꺼내면 모를까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지루하고 힘든 삶 속에 가뜩이나 심심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들에게 나의 헛소문이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며 소문의 근원을 찾으려고 열 올리는 일은 생략하며 산다.

Is Someone Else’s Misfortune My Happiness

"I hope you don’t mind me asking, but 'is your family all healthy?' Just checking out of concern..."

This was in an email from a friend. Suddenly asking a cautious question? It was an unusual greeting, but since this friend isn’t writing long or intriguing emails, I didn’t think much of it and simply replied with an update on how I’ve been lately.


"I was really worried because I heard something strange. I’m glad to hear everything is okay."

The reply was startling, but I didn’t ask for details or who had said these strange things.


There have been several times in my life when I was shocked to hear completely unfounded rumors about my family. Once, in the middle of the night, I was woken by a knock on the door. When I answered, I found a friend and her husband standing there, looking at me with concern.

“We heard that your husband beat you up so badly you’re a mess, so we rushed over. Are you okay?”

I was not lying beaten and bruised by my husband; I was simply asleep, lost in a dream. I ended up setting out drinks and sitting with them all night, sipping awkwardly.


For a year, my husband had been away in Seoul teaching.

“I heard your husband divorced you and left for Seoul. Are you okay?”

“Divorced?”

“I heard you two, who were once such a happy couple, got divorced, so I called just in case. Did you really divorce?”

Do people wish I’d been beaten by my husband, left on the brink of death, and then divorced?


One of the most shocking rumors I heard, which even made me doubt myself, came from a friend in Seoul who called and asked:

“Was your mother’s death a suicide by any chance?”

I was so taken aback that I was at a loss for words. There was absolutely no basis for such a rumor.


Since my own rumors were far from the truth, I learned not to believe gossip about others—though this lesson came the hard way. At a respectable gathering, I asked an acquaintance,

“How is your wife? Didn’t she come with you?”

He turned red with anger and shouted,

“Why are you asking me about her?”

His voice exploded, like a boil bursting after years of restraint, startling everyone around us.

The next day, he called to apologize.

“I’m sorry. The truth is, we divorced a long time ago, but I never mentioned it.”

I had to listen to his long, previously untold story. Since then, I’ve never asked about a spouse’s wellbeing when I see someone alone at a gathering; who knows if they’ve divorced since I last saw them?


Another acquaintance separated from his wife and started dating someone I’d met a few times. I heard that due to some unspoken circumstances, he divorced and is now happily living with someone new. Unless he brought it up himself, I didn’t ask about it. Given that people with boring and difficult lives might find some small joy in the baseless rumors about me, I no longer get worked up or try to track down the source of the gossip.

Saturday, August 24, 2024

여름이 간다


긴 낮이 고개를 넘어갈 즈음 나는 대충 차려입고 밖으로 나간다. 한여름 밤에 묻혀 걷고 싶어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치맛자락 펄럭이는 바람과 함께 걸으면 온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슬슬 갈 준비를 하는 듯 엉덩이를 들썩인다. 떠나려는 여름이 야속하고 서운하다. 여름이 가면 낮이 줄어들고 밤이 빨리 온다.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느낌이다. 

난 더위는 타지 않지만, 추위를 몹시 탄다. 더운 곳으로는 여행을 가도 추운 곳으로는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많은 크루즈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어도 알래스카는 가지 않았다. 알래스카라는 이름만 들어도 추위가 몰려오는 느낌이다

사춘기부터 나는 가을을 무척이나 탔다. 가을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화기애애한 모임이 끝나고 혼자 되어 어두움으로 들어가 눕는듯했다. 엄마는 가을이 오면 시작하는 내 우울함을 걱정했다. 용돈을 듬뿍 주며 친구 집에 가서 놀다 오라고 했다. 어찌 그리도 내 맘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처럼 나를 잘 아는지. 엄마와 살던 것보다 더 오래 산 남편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는지

“마누라는 쾌활 과다증이라니까.”

나라고 우울증이 없을까? 엄마는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성질을 왜 부리는지 다 알고 대처해줬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 당연히 그러려니 하며 살지만, 아쉽다.

오래전, 남편이 서울에 있는 모 대학 강의하러 가서 우리 친정아버지의 옥탑방에서 1년간 기생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장인어른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곤 한다. 남편은 생전 화내지 않고 상냥한 우리 아버지를 보며 영향을 받았는지 더러운 성질 줄어들고 변했다. 성질부리고 짜증 내봐야 자기 손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대로 절대로 남편은 우리 엄마와 아버지 같지 않기에 기대하지 않고 살았다. 남편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에 그와 오랜 세월 큰 싸움 없이 살아 아직도 붙어있나보다.

Summer is Leaving

As the long day begins to wane, I dress up and step outside. I want to walk, enveloped in the midsummer night. Walking with the breeze that flutters my skirt, neither too hot nor too cold, I can fully savor a sense of freedom. It feels as though the summer I love is preparing to depart, slowly lifting its feet. The thought of summer leaving makes me feel both resentful and sad. When summer ends, the days shorten, and the nights come quickly. It's like moving from brightness into darkness, like parting with someone I love.


While I don't mind the heat, I can't stand the cold. I'm happy to travel to warm places, but I wouldn't even think of going somewhere cold. Although I've been on many cruises and traveled to various places, I've never gone to Alaska. Just hearing the name Alaska makes me feel a chill.


Since my teenage years, I have always felt particularly sensitive to autumn. The coming of autumn frightened me. It was like the end of a cheerful gathering, leaving me alone, lying down in darkness. My mother used to worry about my autumn melancholy. She would give me extra spending money and encourage me to visit a friend. How could she know me so well, as if she were living inside my heart? My husband, whom I've lived with for even longer than I lived with my mother, still hasn't noticed and he says.

“You have an excess of cheerfulness,”


Could it be that I don’t have depression? Even without expressing it, my mother always knew what I wanted to eat and why I was upset, and she took care of it. My husband, being 'the other side' as people say, is naturally less perceptive, but I accept that.


Long ago, my husband went to teach at a university in Seoul and stayed in my father’s rooftop room for a year. Even now, he fondly remembers that time and expresses his gratitude toward my father. Perhaps influenced by my father, who never raised his voice and was always gentle, my husband became less irritable and more patient. He realized that getting angry or irritated only harms himself. As for me, I've never expected my husband to be like my mother or father, so I haven't set myself up for disappointment. Because I have no expectations of him, we’ve managed to live together for so many years without major conflicts and are still together.

Thursday, August 8, 2024

재봉틀 밟는 남자


친구 남편은 손재주가 많다. 팬데믹 때는 재봉틀에 앉아 마스크도 근사하게 만들어 주위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연말에는 스카프도 받았다. 집수리도 잘할 뿐만 아니라 정원에 허브를 심어 허브티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이렇게 자상한 남편을 둔 내 친구는 얼마나 좋을까?”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만들 수 있어. 재봉틀만 있으면.”

“정말?”

“내가 총각 시절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특히 백투스쿨 시즌에는 재봉틀이 불이 나도록 청바지 아랫단을 줄였다고. 옷가게 주인도 내 실력에 감탄 했다니까. 대신 드로잉 테이블 만들어 줄까?”

“또 홈디포 가려고?”

“스튜디오에 나무판이 있어. 가지고 와서 만들게.”


며칠 후 남편이 쓴 카드 명세를 들여다보다가 홈디포에서 널빤지 산 기록을 봤다. 자그마치 나 102달러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그 돈이면 차라리 이케아에 가서 디자인 테이블을 사지.

“널빤지 스튜디오에 있다고 했잖아. 그냥 굴러다니는 것 있으면 만들랬지. 왜 새 나무를 샀어.”

“이왕 만드는데 질 좋은 재료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이케아에서 사고 싶은 테이블 봐 둔 게 있다고. 아이고 말을 말아야지.”


남편 별명은 ‘그린포인트 이 목수’다. 가구를 사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냥 만들겠다고 난리 쳐서. 한번 만들겠다고 마음먹으면 내 발끝에서 허리 높이, 키 재느라 자를 들고 쫓아다닌다. 설계도를 그려 보여주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고집부려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마음에 드는 것도 간혹 있지만, 이케아에 점 찍어 놓은 가구가 눈에 아른거려 실망한다. 하지만 만들고 싶어 하는 남편을 둔 내 팔자니 어쩌겠는가. 

“그것마저 못 하게 하면 남편은 무슨 재미로 살까?”

얼마 후, 부셔서 다른 것으로 활용할망정 결국에는 내가 포기한다. 


나무 판때기를 아예 그린포인트 스튜디오에서 재단하고 프라이머를 칠해 핸드카로 끌고 왔다. 오자마자 내 얼굴 볼 틈도 없이 만들기가 급했다. 다 만들어 놓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떨어져서 보고 가까이서 만져본다.

“와! 잘 만들었는데. 수고했어요.”

저녁 식탁에 앉아서 다시 

“너무 잘 만들었어요. 고마워요.”

남편 얼굴을 슬쩍 보니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근데 내 친구 남편은 친구 머리도 염색해 준다는데. 그 집 남편처럼 내 머리 염색 좀 해줄래?

“아주 나를 머슴으로 부리시네. 내가 마당쇠냐? 그건 못해. 미장원에 가서 해. 돈 줄 테니.”

남의 남편 장기 자랑 열거해서 드근로잉 테이블 생기고 싸지 않은 미용실 비용도 챙겼다.  

The man who steps on the sewing machine

My friend’s husband is a very handy man. During the pandemic, he stepped on the sewing machine and made stylish masks to give to people around her wife, and at the end of the year, I even received a scarf. Not only is he good at fixing things around the house, but he also plants herbs in the garden and shares herbal tea with the neighbors.


"How lucky my friend must be to have such a considerate husband,"

I said to my husband.

"I can make things too. Just give me a sewing machine." 

"Really?" 

"When I was single and worked part-time at a clothing store, especially during the back-to-school season, I shortened the bottom of my jeans until the sewing machine caught fire. The store owner was impressed with my skills. Shall I make you a drawing table instead?" 

""Are you going to Home Depot again?" 

"I have a wooden board in the studio. I’ll bring it and make one."


A few days later, while looking at my husband's credit card statement, I saw that he bought a plank from Home Depot for a whopping $102. I knew this would happen. For that money, I could have bought a designer table from IKEA. 

"You said you had a wooden board in the studio. I told you to use whatever was lying around. Why did you buy new wood?" 

"I thought it would be better to use good quality materials since I’m making it anyway." 

"I already saw a table at Ikea that I want to buy. Oh, never mind."


My husband’s nickname is ‘The Carpenter of Greenpoint.’ I can't mention wanting to buy furniture. He always insists on making it himself. Once he decides to make something, he chases me around with a ruler to measure everything from my feet to my waist height. He repeatedly shows me the plans and revises them. While sometimes I like what he makes, I still think about the furniture I had my eye on at IKEA and feel disappointed. But what can I do with a husband who loves to make things? If I take that away from him, what joy will he have in life? In the end, I give up, knowing that eventually, I'll either break it down or repurpose it for something else.


He cut the wooden board in the Greenpoint studio, primed it, and hauled it over with a hand cart. As soon as he arrived, he was too eager to make it to even look at my face. Once he finished, he looked at it from every angle, touched it closely, and stepped back to examine it.

“Wow! It was well made. You worked hard.” 

At the dinner table, I said again, 

"You did a great job. Thank you." 

I glanced at my husband’s face, and he looked pleased as punch.


"My friend’s husband even dyes her hair. Could you dye my hair like he does?" 

"You're really working me to the bone. Am I your servant? I can't do that. Go to the hair salon. I’ll give you the money." 

By listing my friend’s husband’s talents, I got a drawing table and secured some funds for an expensive hair salon visit.

Thursday, July 25, 2024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숲속에 있어요. 나에게 눈길을 줘요’ 
라고 반딧불이 나를 향해 반짝이는 듯하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 불꽃이 반복해서 깜박거리는 듯한 어두운 숲속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불빛을 쫓는다. 반딧불들이 내 검은 옷에도 앉아 불을 밝힌다. 자세히 들여다봤다. 머리는 핑크색이고 날개 부분은 검은색이다. 세련된 조합이다.

올여름은 더위가 일찍 시작했다. 무더위가 계속된다. 나는 일상 스케줄을 바꿨다. 새벽에 공원을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창문마다 커튼을 내린다. 실링팬을 틀고 가만히 앉아 일을 한다. 저녁엔 에어컨을 켜 놓고 공원에 간다. 벤치에 앉아 반딧불을 구경하다가 어둠이 땅속으로 스며들면 집으로 돌아온다. 다른 어느 해보다 반딧불이 왕왕 불빛을 발한다. 


나는 늘 혼자다. 남편은 아침 7시에 작업하러 스튜디오에 갔다가 저녁 7시에 돌아온다. 작업에 빠졌는지 일요일도 간다. 오히려 남편이 나가주면 나는 좋다. 우리는 각자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만큼은 잘 맞는다. 내가 외롭다고 하면 그가 힘들 것이고 그가 외롭다면 내가 힘들어질 것이다. 서로 통하는 것은 별로 없지만, 둘 다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매슬로(Maslow's hierarchy of needs)의 5단계(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 소속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의 한 예로 학교 선생이었던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이따금 떠오른다. 이 여자는 50세에 퇴직하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던 남편에게 이혼 조건으로 퇴직금 반을 줬다. 그리고 작은 백팩 하나 메고 한국을 떠났다. 동남아시아를 떠돌며 배가 고프면 알바하며 자유인으로 혼자 산다. 게다가 자유인, 인도 애인도 있다. 둘이 가끔 우연히 만나면 하룻밤 함께 지내고 헤어지고 지금까지 떠돌아다닌단다. 


나는 남편과 함께 여행한다. 하지만 다른 어떤 일도 함께 하자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동남아시아를 떠도는 이 여자처럼 살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나 여기 있어요. 나에게 눈길 주세요.’ 하는 외로운 몸짓으로 석양에 빠진 비행기 한 대가 하늘에 멈춘 듯 떠 있다. 혼자 있는 나에게 ‘나도 당신처럼 외로워요.’ 손짓하는 듯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이다. 파트너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나는 저 멀리 떠가는 비행기처럼 서로가 방해 하지 않는 온전한 너와 나다. 우리는 떨어져서 각자 평정심으로 자유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