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나는 남자들에게 차이고 상처받을 때마다 성숙해졌다. 괴롭고 슬프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며 머리가 맑아지고 편안해졌다.
오래전,
남자 친구와 나는 실연당한 내 여자친구를 위로한다며 호텔 나이트에서 함께 춤을 추다 통행 금지로 집에 갈 수 없게 됐다. 셋은 호텔로 갔다. 내 남자친구가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자 술 취한 내 여자친구가 뒤따라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남자와 여자를 호텔 방에 남겨놓고 나는 '똑똑' 하이힐 소리를 내며 새벽의 충무로 거리를 헤매다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밤을 꼴깍 새며 나를 기다렸고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나서 내 다리 몽둥이를 부러트리겠다며 벼르고 계셨다.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자고 왔어?”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잽싸게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호텔 방에 남겨 놓고 온 내 남자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전화기를 귀에 대기가 무섭게
“그럴 수가 있어요.”
원망의 소리가 들렸다. 자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두 남녀가 방으로 들어가는데도 말리지 않고 사라졌다며 오히려 큰소리로 나를 탓하는 게 아닌가.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내가 미친년이지. 술이 원수야. 원수.”
여자 친구는 집에 찾아와 사과했다. 우리는 그 이후 그날 일을 다시는 거론하지 않고 예전처럼 지냈다. 그러다 친구는 헤어진 남자와 화해하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
화창한 봄날 오전 11시, 충무로에 있는 결혼식장으로 가는 내 몸에서는 기름 냄새가 솔솔 났다. 하루 전날 세탁소에 맡긴 옷을 급하게 찾아 입었기 때문이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해하는 친구에게 가까이 다가가
“축하해”
"야! 무슨 냄새야, 너한테서 휘발유 냄새가 나서 미치겠다.”
친구가 손을 앞뒤로 저으며 멀리 가란다. 나는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친구가 부케를 준다고 했으니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꼭 부케를 받아 나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조금 떨어져 따라다녔다. 친구는 나에게 부케를 던져주고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신혼여행을 간다며 차에 올랐다.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친구들은 한 명씩 시집을 가는데 나는 어디 가서 어떤 남자를 잡아 결혼해야 하나, 착잡한 심정으로 충무로 거리를 또다시 '똑똑'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었다. 부케를 받으면 결혼을 곧 한다고들 하는데 어느 변변한 남자 하나 만나자는 사람도 없이 시간만 갔다.
“요즈음은 너에게 전화하는 녀석도 없냐? 사귀는 사람 없어?”
“요즈음은 너에게 전화하는 녀석도 없냐? 사귀는 사람 없어?”
아버지는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전화 받아라. 남자다.”
신이 나서 바꿔줬다. 전화를 끊는 순간까지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누구야? 한데 목소리가 어째 늙은이 목소리다. 너, 혹시?”
“학교 교수님이에요."
아버지는 실망하던 모습을 감추며 나를 위로했다.
"공부도 더 할 겸 미국에 가지 않을래? 누가 아냐 미국에서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 거기 가서도 못하면 그냥 혼자 자유롭게 살아라.”
과연 아버지 말대로 뉴욕에 와 시간이 지나니 남자가 한 명 나타났다. 그러나 만난 지 2년이 지나도록 통 결혼하자는 말을 안 하는 게 아닌가.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자존심을 허드슨강물 속에 꾹 처박고 아쉽고 급한 내가 반지 두 개를 샀다. 남자를 옐로 택시에 태워 시청에 끌고 가 결혼을 해 엄마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렸다.
그러나 부모의 걱정은 끝도 한도 없이 지속했다. 아버지는 내가 갑자기 이혼을 당해 보따리를 들고 친정 문 앞에 서 있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단다. 아무래도 내 자존심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허드슨강물 위로 올라오기는 힘들 거다. 가끔 올라 올 때마다 밀어 넣고 또 밀어 넣는다. 늙으신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그깟 자존심 정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