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8, 2025

원숭이의 진실


‘원숭이는 사실 사람 말을 알아듣지만, 일을 시킬까 봐 모르는 척한다.’라는 인도네시아 속담이 있다.

“너 어디 가서 뭐 잘한다고 말하지 마라. 사람들이 일 시킨다.”

친정 엄마가 늘 나에게 하던 말과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절대 먼저 나서서 일을 벌이지 않는다. 누군가 동참을 권유하면 깊이 생각한다.

‘과연 이 사람이 잘 리드할 능력이 있는가? 일하다가 싫증 나면 잠수 탈 인간인가? 본인이 꺼낸 말에 책임 있는 사람인가? 얼마나 끈질기게 일할 사람인가? 남을 배려하는 공감 능력이 있는가?” 

왜냐하면 이일 저일 다 끼어들었다가 낭패 보기 싫고 내가 원하는 일만 꾸준히 하고 싶어서다. 나는 일단 하기로 마음먹으면 쫓아낼 때까지 리더가 하라는 대로 따르며 질기게 붙어있다. 물론 이따금 푼수를 떨어 비난받을 때도 있지만, 내가 내 푼수 짓을 알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

 

내가 속한 ‘수’ 북클럽 회장은 위 조건들을 다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질긴 질경이다. 나는 그녀의 남편을 1995년에 그녀보다 먼저 만났다. 내 남편이 한국에서 교수하고 싶다고 하도 졸라서 그는 서울로 나는 킨더 가든 다니는 아이 둘을 데리고 학군 좋다는 뉴저지 클로스터로 이사 갔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파트타임 직장을 구하려고 찾아간 곳이 북클럽 회장님의 남편 회사였다. 면접 볼 때 경험도 없고 나이가 많다니까 사장님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며 일하라고 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서 나는 사장님의 사모님을 북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뉴저지 노스버겐 카운티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20년 동안 선생 하다가 은퇴했다. 선배 전시회 오프닝에 갔다가 그녀가 내 예전 직장 사장님과 함께 있는 것을 봤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의아해했더니 부부라는 것이다. 


옛 직장 사장님 부인은 내가 속한 북클럽과 글 클럽의 회장으로 모임을 오랫동안 리드하고 있다. 나는 리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마음에 그녀를 잘 따르는 것이 그녀를 돕는 것이라며 일상의 한 단면으로 습관화했다.

The Truth About Monkeys

There is an Indonesian saying: “Monkeys actually understand human language, but they pretend not to, because they don’t want to be given work.”

It means, “Don’t go around telling people you are good at something. They will make you do the work.” My mother used to tell me the same thing.

Maybe that’s why I never start things first. When someone asks me to join a project, I think very carefully:
“Can this person really lead well?
Will this person disappear when things get boring and have problems?
Will this person take responsibility for their own ideas?
Can this person keep going until the end?
Does this person care about others and understand their feelings?”

I don’t want to get involved in many things and end up disappointed. I want to focus on the things I really want to do. Once I decide to join something, I stay with it until the leader kicks me out. I follow the leader and stick with the work. Sometimes I act silly and get criticized, but I know my own silly side, so I don’t worry too much.

The president of the “Soo” book club I belong to has all the qualities I look for, and she is even more persistent than I am. I met her husband first, back in 1995. My husband kept saying he wanted to teach in Korea, so he went to Seoul, while I moved to Closter, New Jersey, with our two little kids because it had good schools. While the kids were in school, I looked for a part-time job. The place I went to was the company of the book club president’s husband. During the interview, I said I had no experience and I was older, but he told me age is just a number and hired me.

More than ten years later, I met his wife for the first time at the book club. She had been a high school teacher in North Bergen County for 20 years before retiring. I later saw her at a gallery opening with my old boss and wondered what was happening. That’s when I learned they were married.

His wife is now the leader of both the book club and the writing club I belong to, and she has been leading for a long time. I know how hard it is to lead a group, so I follow her well. I think that supporting her is one way I can help, and it has become part of my daily routine.

Thursday, November 13, 2025

늙어도 여전히 봄처럼


나는 해가 질 녘, 노을빛에 취해 맨해튼을 걷고 있었다.

“와우 너 옷 멋지게 입었다.” 

뒤에서 백인 여자가 말을 걸었다. 그 여자를 쳐다보니 엄청 멋쟁이다.

“너야말로 멋지게 옷을 입었네.” 

내가 말하자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만나서 차라도 마시면 어때? 네 전화번호 줄 수 있어?”


적극적으로 나에게 말 거는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줬다. 혹시 레즈비언이 아니냐? 조심하라는 엉뚱한 소리하는 남편 말을 무시하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디자이너로 오래전 유대인 의사 남편과 이혼했다. 그녀의 이혼 사유는 남편이 부인과 아이들보다 부모와 형제를 먼저 챙기는 것을 참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개인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그녀에게 꽤 흥미를 느꼈다. 그녀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매력적인 싱글이다. 옷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겹겹이 입었다.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한 차림새다. 그 여자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너 너무 매력적이라서 남자들이 추근대면서 따라오지 않아?” 

“나는 욕망이 없어. (I have no desire.)”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말이 있다. 직장 다니며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외모를 가꾸지 않는 젊은 여자들이 있다. 애쓰며 돈 벌어다 준 부인에게 고마움은커녕 외모를 지적하며 창피해하는 철없는 남편들이 많다. 나이 든 여자들은 귀찮아서, 살이 쪄서 굳이 애쓸 필요가 있을까? 라며 포기한다. 편안한 삶에 안주하다 보면 마음도 습관적으로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게 된다.


“여자가 로맨스를 잃으면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진다.” 

라고 말하던 친정아버지 말씀이 떠오른다. 건강 챙기며 96세까지도 여자 친구가 많았던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 누워 영원히 살 줄 알았다는 듯이

“내가 왜 이렇게 됐니?”

“그래도 아버지는 원하는 삶을 원 없이 살았잖아. 죽음을 우리가 어찌할 수 없잖아. 받아 드려야지요.”

내 요 주둥이가 아파서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철 좀 들으라는 식으로 한마디 했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다 죽어도 본인만은 영원히 사는 줄 착각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몸을 가꾸고 자신을 성장시키며 살다 가고 싶다. ‘늙기 전에는 젊음이 좋은지 모른다. 죽기 전에는 삶도 고마운지 모른다.’ We should not give up.

Still Like Spring, Even When Old

I was walking in Manhattan at sunset, drunk with the beauty of the sky.
“Wow, you’re dressed so nicely!”
A white woman spoke to me from behind. I looked at her.  She was very stylish.
“You’re dressed beautifully too,” I said.
Then she asked,
“How about we meet for coffee? Can I have your phone number?”
She was very friendly, so I gave her my number. We became friends. She was a retired designer. Long ago, she divorced her Jewish doctor husband. She said she left him because he always cared more about his parents and brothers than his wife and children.
Whatever her story was, I found her very interesting. She had a positive, bright energy. She was an attractive single woman who dressed with great care. Every piece of clothing matched perfectly. Her style was her own creation. She herself was like a piece of art.
“Don’t men follow you? You’re so attractive,” I asked.
“I have no desire,” she said.
There is a saying: When you give too much, people throw you away.
Many young women work hard, raise children, and support their husbands, but don’t have time to care for their looks. Some foolish husbands even make fun of their wives instead of feeling thankful. Older women often say, “I’m too tired,” or “I gained weight, why bother?” and give up. But when you always choose comfort, your heart also becomes lazy.
My father used to say, “When a woman loses romance, she loses her charm.”
He lived until 96 and always had many lady friends. Before he died, lying in bed, he said,
“Why did this happen to me?”
I told him, “Father, you lived the life you wanted. No one can stop death. We have to accept it.”
People think they will live forever, even when everyone around them dies.
But I want to take care of myself and keep growing until the very end.
We don’t know the value of youth until we get old. We don’t know the value of life until we face death. We should not give up.

Thursday, October 30, 2025

행복이 뭐 별거냐


올가을은 유난히도 길었다. 나뭇잎은 계절을 잊은 듯 여전히 초록색을 띠며 떨어질 생각이 없다.  

센트럴 팍을 걷다가 갑자기 설사가 나오려고 했다. 티제이 맥스에 들어가 화장실로 뛰었다. 남자 소변보는 용기를 본 것도 같은 데 급해서 눈에 뵈는 게 없는지 그냥 들어갔다. 변을 봤다. 휴지통에 휴지가 없다. 내 주머니에도 없다. 와! 어떡하지.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끙끙거리는데 바로 옆 칸에서 인기척이 났다. 밑 뚫린 곳을 보니 남자 구두가 보였다. 아이고, 내가 남자 화장실에 앉아 휴지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급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뻔뻔해진다더니. 


“죄송한데요. 여기 휴지가 없어요. 휴지 좀 건네줄 수 있을까요?”

조용히 화장실 밑으로 한 움큼의 휴지를 받았다. 내 사정을 훤히 안다는 듯 또다시 한 뭉치의 휴지를 건네줬다. 

“대단히 고마워요. 혹시 제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왔나요?” 

굵직한 소리가 말했다.

“네, 여자 화장실은 입구 오른쪽에 있었는데 지나쳤군요.”

“너무 급해서 보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 남자가 나오기 전, 후다닥 일어나 뒷정리를 위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용변이 급할 때마다 자동으로 닥터 지바고 영화가 떠오른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유대인들을 태운 영화의 기차 안 풍경을 떠올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대변이 급하면 어찌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닥터 지바고에서는 기차에서 생긴 오물을 버리기 위해 문을 여니 문 크기의 얼음판으로 막혀있다. 삽으로 얼음을 후려쳐서 깨고 볏짚 더미에 엉긴 오물을 문밖으로 쓸어내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변기에 앉아 변을 볼 수 있다는 크나큰 행복에 빠졌다.


고차원적인 삶이 굳이 아니더라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기만 해도 행복하다. 나에게 행복을 안겨준 옆 화장실에 앉아 있던 점잖은 남자에게 감사한다. 

What Is Happiness, Really?

This fall was unusually long. The leaves stayed green, as if they forgot the season, and didn’t want to fall. While I was walking in Central Park, I suddenly felt I had to use the bathroom. I ran into T.J. Maxx and rushed to the restroom. I think I saw urinals, but I was in such a hurry that I didn’t care and just went in. After I finished, I found there was no toilet paper in the bin. I checked my pockets — nothing! Oh no! What should I do?

I held my head with both hands, panicking. Then, I heard someone in the next stall. I looked down and saw a man’s shoes under the wall. Oh my goodness — I was in the men’s restroom! When I’m desperate, I forget shame. I said,

“Excuse me, there’s no toilet paper here. Could you please give me some?” 
A quiet hand passed me a handful of paper under the wall. Then he kindly gave me some more, as if he understood my situation.
“Thank you so much. Did I come into the men’s restroom?”
A deep voice answered,
“Yes, the women’s restroom is on the right side of the entrance. You missed it.”
“I was in such a hurry. I’m sorry, and thank you.”

Before he came out, I quickly went into the women’s restroom to clean up. Whenever I really need to go to the bathroom, I remember the movie Doctor Zhivago. I also think about the train scene with Jewish people being sent to Auschwitz. I always wonder — what did people do when they needed to use the toilet on that train? It must have been terrible.

In Doctor Zhivago, people try to throw out the waste from the train, but the door is blocked by a thick sheet of ice. They break the ice with a shovel and push out the frozen waste with straw. Sitting on a clean toilet now, I suddenly feel very lucky. Even a simple thing like this is happiness.

You don’t need a high-class life to be happy. If you can sleep well, eat well, and poop well, that’s true happiness. I feel grateful to that kind man in the next stall who gave me toilet paper —he gave me not just paper, but happiness.

Friday, October 17, 2025

백림사와 원각사를 돌고 돌아


“사랑방 마운틴에 가자. 가기 전에 절에 들렀다가. 내가 픽업 갈게. 준비하고 있어.”

지난밤부터 배가 살살 아프고 구토증이 나는 것이 심상치 않다. 산책하면 나을 것 같아 공원에서 걷고 있었다.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을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아플 때 친구들과 놀면 낫는 체질인 나는 신이 났다. 다운타운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도 함께 간다고 우리 집으로 오는 중이다. 셋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절로 가는 거야.”

운전하는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백림사.”

“사랑방 마운틴이 그 사찰 근처에 있어? 내가 오래전에 그곳에서 템플 스테이 했는데. 꽤 멀어.”

“그 절에서 조금만 가면 사랑방 마운틴이야.” 

11시경에 떠났는데 백림사에 도착하니 2시경이었다. 사찰 마당이 횅하니 비어 아무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우리가 식당 안을 기웃거리자, 비구니 두 분이 들어오라고 했다. 콩나물밥을 먹으라며 김치와 상추와 양념장과 된장국을 꺼내주셨다. 신도들을 점심 봉양하시고 다 치운 상태에서 우리가 들이닥쳤는데도 반가이 맞아주셨다. 한국인만이 베풀 수 있는 마음 씀씀이에 미안하고 고마워서 나는 문밖에서 우물쭈물했다.


산사에서 새우와 오징어를 넣은 콩나물밥을 상추에 싸서 양념장을 얹어 먹는 맛이란! 정신놓고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대학 선배님이 들어오시는 것이 아닌가. 서로 껴안고 반가워 어쩔줄 몰랐다.

“사랑방 마운틴은 원각사 근처에 있어. 여기서 뉴욕 가는 길로 한 시간 되돌아가야 해.”

선배님이 말했다. 원각사에 가야 하는데 친구가 내비게이터에 백림사를 찍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선배님을 만나려고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일까? 길을 잃을 때마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기는 까닭은 부처님 은덕인가 보다. 선배님과 아쉽게 헤어진 후 우리는 원각사를 향해 또 달렸다. 너무 늦어 원각사는 다음에 방문하기로 하고 그 근처에 사는 화가 조성모 작가 스튜디오 사랑방 마운틴에 도착했다. 돌고 돌아오다 보니 저녁나절 4시 30분이었다. 


운전하는 친구는 꼬리뼈가 아프고 또 다른 친구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아침에 소화가 안 되고 배가 아팠는데 말짱해졌다. 보고 싶었던 선배를 우연히 만나고,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 떨고, 게다가 백림사 두 비구니 스님의 은덕으로 어릴 때 엄마와 자주 가서 먹던 사찰 음식이 나의 아픔을 말끔히 치료했다. 예상치 못한 즐거운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