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17, 2025

백림사와 원각사를 돌고 돌아


지난밤부터 배가 살살 아프고 속이 메슥거리는 게 영 심상치 않았다. 산책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 집 근처 공원을 걷고 있던 참이었다. 일요일이라 한창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 친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사랑방 마운틴에 가자. 가는 길에 절에도 좀 들르고. 내가 픽업 갈 테니 준비하고 있어.”

몸이 아프다가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 씻은 듯이 낫는 체질인 나는 금세 신이 났다. 다운타운에 사는 또 다른 친구도 함께 가기로 했다며 벌써 우리 집으로 오는 중이란다. 그렇게 모인 우리 셋은 차 안에서 그간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어느 절로 가는 거야?” 운전대를 잡은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백림사.” “사랑방 마운틴이 백림사 근처에 있어? 나 아주 오래전에 그곳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 꽤 멀잖아.” “그 절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사랑방 마운틴이야.”

오전 11시쯤 출발했는데, 백림사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사찰 마당은 횅하니 비어 있어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양간 안을 기웃거리는데, 비구니 스님 두 분이 우리를 보더니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셨다. 스님들은 신도들의 점심 공양을 모두 치우고 정돈을 끝낸 상태였음에도, 불쑥 들이닥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콩나물밥을 한 그릇씩 내어주셨다. 잘 익은 김치와 싱싱한 상추, 매콤한 양념장에 구수한 된장국까지 차려내시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만이 베풀 수 있는 이 정스럽고 넉넉한 마음씨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해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산사에서 새우와 오징어를 넣은 감칠맛 나는 콩나물밥을 상추에 싸서 양념장을 얹어 먹는 맛이란! 정신없이 밥을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내 눈을 의심할 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대학 선배님이 공양간 안으로 걸어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너무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체면도 잊은 채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어쩔 줄 몰라 했다.

“사랑방 마운틴은 원각사 근처에 있어. 여기서 뉴욕으로 가는 길로 한 시간은 족히 되돌아가야 하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선배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원래 가려던 곳은 원각사 근처였는데, 친구가 네비게이터에 백림사를 잘못 찍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소중한 선배님을 우연히 만나게 하려고, 운명이 잠시 길을 잘못 들게 속인 것일까. 길을 잃을 때마다 이렇듯 더 재미있고 기적 같은 일이 생기는 걸 보면, 이 또한 부처님의 크신 은덕이 아닐까 싶다. 선배님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다시 원각사를 향해 차를 달렸다. 시간이 너무 지체된 탓에 원각사 참배는 다음으로 미루고, 그 근처에 자리한 화가 조성모 작가의 스튜디오 ‘사랑방 마운틴’에 도착하니 이미 사위에 저녁 빛이 감도는 4시 30분이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아오느라 운전한 친구는 꼬리뼈가 아프다 하고, 다른 친구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침까지만 해도 소화가 안 돼 끙끙 앓던 내 배는 신기하게도 말짱해져 있었다. 보고 싶던 선배를 기적처럼 만나고,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를 떨고, 백림사 두 분 스님의 따뜻한 은덕이 담긴 공양을 받은 덕분일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가 먹었던 그 정겨운 사찰 음식의 맛이 나의 오랜 아픔을 말끔히 치료해 준 듯했다.

길을 잃어 비로소 완벽해졌던, 참으로 예상치 못한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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