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백 번째 글을 쓰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 오백 점 작품과 함께.
2008년 6월 11일, 첫 글 ‘위층에 사는 마리아’를 썼습니다.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 살 때, 같은 건물 4층에 살던 29세에 오스트리아에서 온 할머니 이야기였습니다. 그 당시 할머니의 나이가 정확히 물어 본 적은 없지만 92세 정도라고 기억합니다. 그녀의 남편 토니는 아침마다 경로 센터에 갈 정도로 4층을 올라다녔습니다. 마리아는 병원에 갈 때 이외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토니가 더 건강한 줄 알았는데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마리아 혼자 살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녀는 일하고 돈 모으느라 아이도 낳지 않았습니다. 나는 쉽게 상하는 우유를 가지고 일주일에 한 번 그녀를 방문해서 1시간 정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토니 수임이 왔어.” 부르는 마리아는 남편 토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은 듯 행동했습니다.
글을 처음 시작할 당시, 마리아 이야기를 시작으로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에 관한 글을 돌아가며 다 쓰고 더 이상 쓸 것이 없으면 어쩌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18년 동안 중앙일보에 계속 지금까지 쓰고 있다니! 내가 중앙일보에 글과 그림을 보내면서 “감사합니다.” 하면 중앙일보에서도 “잘 받았습니다.”로 이메일 옵니다. 나는 제때 글과 그림을 보내고 중앙일보는 제때 신문에 실어 줍니다.
한번 시작하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나는 글과 함께 그림도 보내야 하므로 작업도 거의 매일 붓을 놓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글은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중앙일보가 저에게 준 지면 덕분에 글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또 다른 글 쓰게 하는 동기는 제 남편입니다. 제가 남편에 대한 불평불만을 써도 개의치 않고 쓰고 싶은 것 마음대로 써서 스트레스 풀라고 응원합니다. 처음엔 쓰고 싶은 것을 다 쓰다가 집안 망신시키는 것이 아닐까? 망설였지만, 뭐 그리 대단한 집안이라고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마구 썼습니다. 내 글을 읽고 남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는 뻔뻔함이 내 안에 웅크리고 빛 볼 날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늘고 길게 오래가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어렵고 유식한 글 소재가 아닌 눈 뜨면 주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상을 일기 쓰듯 쓰기 때문에 수도꼭지 물 새듯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신 독자님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