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기 때문인지 나는 덩치 큰 사람을 좋아하지 않거니와 거창한 것도 싫어합니다. 며칠 전 갤러리에서 만난 한 여자로부터 “영어 이름(sooim lee)을 왜 소문자로만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전에도 서너 번, 내 이름이 잘못 기재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 소문자로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름의 의도가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질문을 받고 나서야 나의 그 무의식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살다 보면 절대로 어디에서도 마주치기 싫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서늘하게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게는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 나이 스물여섯, NYU 재학 시절에 만난 남자입니다.
그는 남미 콜롬비아에서 음악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까이 서 있던 그 남자가 불쑥 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 너 알아요.”
깜짝 놀랐습니다. 흰 피부에 슬픈 잿빛 눈동자를 가진, 배우 제이크 질렌할(Jake Gyllenhaal)을 닮은 훤칠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초라한 차림새가 부끄러워 슬그머니 지하철 기둥 뒤로 숨으려는 나를 보며, 그는 껄껄 웃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난 네가 사는 아파트 옆 건물에 살아요.”
같은 대학에 다니는 이웃 남자라니, 게다가 그가 먼저 말을 걸어오다니. 가슴이 콩콩거려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섬세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던 그는 얼마 후, 돌연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내가 “왜 학업도 마치지 않고 떠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냥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요.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지난 삶을 잊고, 또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의 그 말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타지를 떠돌며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져 구글링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그의 이름만 기억날 뿐 외우기 어려웠던 성(Last name)은 잊어버려 그조차 불가능합니다.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매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그와 달리, 나는 뉴욕에 깊이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남과 다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 '다름'에 대한 갈망은 거대하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작은 모습에 어울리는 작은 이름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나는 원래 크고 굵고 충격적인 것보다는, 보일 듯 말 듯 숨었다가 사라지는 것들에 마음이 끌립니다. 나의 그런 성향 때문인지, 대학에서도 날카로운 송곳으로 섬세한 이미지를 긁어내는 동판화(etching)를 전공했습니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하면서도, 날카롭게 살아 숨 쉬는 그 가는 선의 떨림을 사랑합니다. 내가 이름을 온통 소문자로만 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지독히 얇고 세밀한 떨림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고백이라면, 소문자 이름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될 수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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