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ugust 9, 2014

또 다른 일탈

"아이고~ 이놈의 뱃살 어찌 이 지경이 되도록 퍼먹고 늘어져 놀았단 말이냐~" 
흔한 판소리의 한 구절이 아니다.

친구들과 3 베드룸 리조트에서 각자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뒹굴었다. 수다를 떨다, 먹다 자다 다시 먹고 자며. 집 떠나기 전 남은 식구들 식사 걱정으로 이것저것 준비하다 지쳐 후줄근한 모습으로 떠나는 일을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아 가출하듯 떠났다. 그러나 청소는 했다. 몇 년 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이 하듯 돌아다니다 영영 되돌아오지 못할 경우, 내가 살던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다.

"다리 성할 때 열심히 돌아다녀라." 
친정아버지가 늘 하던 말씀이다. 
“아버지 피곤해, 집에 있는 것 그냥 먹고 밖에 나가는 것 관두지요.” 
“다리 성할 때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녀야지 아프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다.” 
친정아버지가 밥하기 싫고 맛있는 음식 먹고 싶을 땐 더욱더 그립다.
서울에 머물며 뉴욕에 두고 온 식구 걱정하는 나에게 
“세상은 너 없이도 변함없이 잘 돌아간다. 괜한 걱정하지 마라. 내가 병원에 오랫동안 누워서 내가 없는 동안 집안이 꼴이 말이 아니겠지? 걱정했는데 퇴원하고 집에 오니 나의 부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돌아가더라."
섭섭함을 동반한 안도의 말씀을 하셨다.

'내가 아니면 안 되겠지가 아니라 더 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집을 떠났다. 집안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리모트 컨트럴로 TV 채널을 바꾸듯 아이들에게 클릭, 남편에게 클릭하며 잔소리할 것이 아니다. 그들이 알아서 찾아 먹고 그들만의 시간 속에서 방황하다 자리를 찾아가도록 빠져줘야 할 것 같아 아무런 식사 준비도 없이 무작정 떠났다.

아버지 말이 맞았다. 몇 날 며칠을 나갔다가 왔는데도 끄떡없이 잘들 지내고 있었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확 풀렸는지 표정이 밝고 훤하다. 한때 그들은 내가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찾더니.

나도 나만의 시간 속에서 그동안 일궈 온 가정을 뒤돌아 보며 푹 쉬면서 재충전하고 나니 일상의 소소함에 연연하던 집착 또한 헛된 욕심임을 알았다. 앞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과 남편에게 가끔은 빠져주는 예의 정도는 지키며 살아야겠다. 그들이 내가 필요할 때는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그러나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주위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그들의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가야 한다.

나를 위한 무대를 찾아 또 다른 일탈을 꿈꾼다.

Friday, August 8, 2014

Another deviation

'Oh, my god, this fat belly, how could I have eaten this way?

My friends and I each took up one room at three-bedroom resort and rolled around. We quarreled, ate and slept. I ran away from home because I do not want to repeat to prepare what I left out of my family’s meal. But the cleaning was done. I do not want to show the dirty thing that I have lived in if I can’t come back forever.

'When you have a strong leg, you should go out to eat something delicious food.’ That’s what my father used to say. I miss my father even more whenever I don’t want to cook.

When I visited Seoul, I was worried about my family who stayed in New York. My father said, "The world is going well without you. Don’t worried about it." Once my father stayed in the hospital for a long time. He though, 'Would it be a mess in his family business without him?' but he came home from the hospital, "Even if I was not at home, everything goes well.” He said relief.

I felt free to leave home for one week because I thought it might be better. Just like changing the TV channel with the remote control, I don’t have to sit around at home nagging the children and husband by like clicking and telling them what to do. I think they should get though their way to find themselves eating and wander in their own time.

My father was right. I had been going out a week, but they were doing well. Rather, they look bright as if they have completely released the stress.

In my own time, I looked back at the family that I had worked on and recharged it while resting. I knew that my obsession with the smallness of everyday life was also vain greed.
From now on, I will live with the decency that sometimes miss for those who need time alone.

When they are needed me will be willing for them, but when they do not need me, I have to go down on their own stage without being too close.

I dream of another deviation to find the stage for me.

Saturday, August 2, 2014

내가 술을 끊은 이유

‘하루에 사과 한 알을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데.' 

독방에 갇혀 치료받는 알코올 중독자가 면회 오는 친지에게 항상 사과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 했다. 술을 끊고 건강하게 살려고 결심했나 보다 했더니 웬걸! 독방에서 사과주를 담고 있더란다. 현대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 신상품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와도 술만 한 발명품은 없다며 허구한 날 마시던 술을 끊은 지 두 달이 넘어간다.

학교 갔다 올 즈음, 반주하시는 아버지 옆에 앉아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애교를 떨면 기분 좋아진 아버지는 지갑을 열고 용돈을 줬다. 그리고는 
"너도 한잔해라."
조그만 잔에 술을 따라주던 것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당시 국내 수준으로 손색이 없다는 포도주 ‘마주앙’으로 이어져 와인 없는 세상은 ‘앙꼬 없는 찐빵.’일 정도로 임신했을 때만 빼고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오랜 세월 함께 했다.

한잔 이상 마시지 않는 친정아버지처럼 저녁에 한잔 오프닝에서는 두잔, 취하거나 술주정을 한 적은 없지만 술에 체하기 때문에 조심한다. 술을 좀 과하게 마시면 한밤중에 일어나 토사곽란을 했다. 흥에 겨워 이것저것 섞어 마시면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쓰러져 비실대면서 오슬오슬 추워 깨어나곤 했다. 다행히 머리를 다치지 않고 깨어났길래 망정이지 혹 운이 없었으면 지금 이 글을 쓰지도 못하고 저 세상에서 한잔하고 있지 않을까?

모범이 되어야 할 엄마가 해가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신이 나서 술상을 차리고 한잔하라며 아이들에게 권하곤 했다. 술병을 상 밑으로 슬그머니 감추며 철없는 엄마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이를 보면서 
"고만둘 때가 오긴 왔구나."

“나 술 끊었다.’” 
“잘했다. 그렇지 않아도 누구 좋은 일 하려고 허구한 날 마시나? 했다." 
“누구?” 
“너 술 마시다 일찍 죽고 네 남편 새 장가가면 엉뚱한 여자만 영광 보는데 억울하지도 않니? 술 끊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친구 말을 듣고 보니 오랜 세월 병석에 계시다 일찍 돌아가신 우리 엄마는 억울하겠다. 고생하며 아끼고 쓰지 않고 모은 재산 쉽게 써 대는 며느리와 아버지의 걸프랜드만 횡재했다. 가슴이 쓰리다. 
“다 그들이 타고 난 복이다.”
아버지는 얄밉게 얼버무리기나 했는데.

죽은 마누라만 생각하며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는 것이 또 다른 세상의 조화니 어쩌겠는가. 억울함이란 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더욱 억울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삶을 잘 관리하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지. 엄마처럼 일찍 가지 않으려면 술을 정말 끊어야 한다.

오프닝에서는 어떡하지? 그나마 와인을 마셔야지 삐꺽거리는 기계에다 기름을 치듯 버벅거리던 영어가 술술 나오는데.

Friday, August 1, 2014

The reason I stopped alcohol

‘One apple a day doesn’t need a doctor.'

An alcoholic in solitary confinement who is being treated has always asked his visiting relatives to bring apples. The relatives thought that he decided to quit drinking and live healthy. But he was making apple wine.

For me, no matter how advanced modern civilization has developed, there is no invention that is nothing more than alcohol, even though new products have been poured out in a torrent.

It has been two months since I've had a drink that I enjoyed on my fancy.

By the time I came home from school, sitting next to my beloved father and told him stories that had happened at school. My father, feeling better, opened his wallet and gave me pocket money. Then he poured me a small glass of wine, saying, “You have a drink too,” as it was from high school. The wine has been a part of my life for many years except when I was pregnant.

Like my father who doesn’t drink more than a cup, I drink two glasses at the opening of the evening, never drunk, but I am careful because I get sick. When I drank too much alcohol, I woke up in the middle of the night and made vomiting and diarrhea. I was falling down to the bathroom. Fortunately, I woke up without hitting my head. If I had no luck, would not I be able to write this now.

I am a mother who should become the model would be excited to offer the sons drink when the sun began to dim. I decided to stop drinking while I watched my son who looked at me with his anxious eyes, hiding the bottle at the bottom of the table.

"I have stopped drinking." "Good for you. If you keep drinking and die early, are not it unfair, your husband’s new married woman is only one is seeing glory? You’ll have to stay healthy long." My mother who has been sick for a long time and died early would be unfair. My heart was overwhelmed by the thought that my sister-in-law and my father's girlfriend have a good life to spend money that my mother has suffered and saved without spending. “It’s all their luck.” My father used to say, evadingly. 

It is all the more unfair because injustice comes the nearest people, but who should blame? I should blame myself for not managing my life well. If I do not want to die as early as my mother, I should really stop drinking alcohol.

What about the opening? I have to drink wine otherwise I can’t speak English fluently.

Saturday, July 26, 2014

어제는 여기에 있었지만

“오늘이 마누라 생일이지?” 
“아이고머니나! 내 생일을 다 기억하고 결혼 30년 만에 처음이네.” 
남편이 어떻게 해주겠다는 다음 말을 기다리지만 아무 말이 없다. 

“고마워 그동안 하루하루가 생일인 것처럼 잘해줬는데. 이 산딸기로 충분해.”
잘 익은 산딸기를 한 움큼 받아들고 이만한 생일 선물이 과연 있을까 싶다. 요즈음 아침마다 걷는 산책 길가에 산딸기가 한창이다.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던 옛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혹시 티켓을 받을까 봐 나는 길가에 서 있고 남편은 숲을 헤집고 산딸기를 따서 잘 익은 것을 골라준다. 
“더 따줄까?” 
“됐어요. 내일 먹을 것을 남겨 놔야지.”

“오늘이 내 생일인데.” 
“일 년에 마누라 생일이 도대체 몇 번이야? 어릴 때 난 말만 꺼내도 할머니와 엄마한테 혼났어. 이북사람은 생일 안 챙겨.” 
그렇게 나의 생일이 남편의 초 치는 한마디에 묻어 사라졌었다. 그런데 웬일로 남편이 먼저 물으니 감격할 수밖에. 안 하던 짓을 하는 남편을 새삼스럽게 쳐다보니 머리는 백발에 주름이 주렁주렁, 늙어서 기가 빠졌나? 그도 그렇겠지 남자로 태어나 세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파티, 선물 그런 번거로움보다는 산딸기를 한 움큼 따서 주는 남편이 곁에 있다는 자체가 생일 선물이다.

뛰기도 하고 남편과 함께 걷기도 했던 아침 산책의 걸음걸이가 점점 뒤처진다. 왼쪽 허리가 언덕을 오를 때 쑤셔서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쏜살같이 사라져가는 남편의 등을 보면 얄미워서 따라가 잡고 그냥 머리통이라도 한 대 갈기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 남편은 뒤돌아도 보고, 기다려도 주고, 빨리 오라고 손짓도 한다.

이렇게 멀어지다 어느 날 남편이 뒤돌아봤을 때 시야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남편 또한 내 시야에서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따라잡을 수는 없어도 등을 보고 걸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다. 얄미웠던 남편의 등이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등불 같다.

"다음 세상에도 남편과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고 묻는다면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온몸을 가시로 두른 선인장 같은 남편, 가까이 다가가 물을 주고 관심을 기울이면 귀찮아하며 시들시들해진다. 돌보지 않고 무심하면 관심을 끌려고 말라 비틀면서 꽃을 피운다. 가까이도 멀리도 할 수 없는 까다로운 당신(뒤틀이)이기에 이생에서만. 다음 생은 바람이 되어 혼자 자유롭게 떠돌고 싶다.

우리는 모두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영원히 살 수 없다. 
‘어제는 여기에 있었는데.’ 
후회하지 말고 지금 저 멀어져가는 얄미웠던 등을 사랑해야지.

Friday, July 25, 2014

I am here yesterday, but

"Is your birthday today?" "Oh my god! You remember my birthday for the first time in 30 years of marriage." I’m waiting for my husband to say what he will do for me, but he says nothing. "Thank you. Every single day has been good as if it was my birthday. This raspberry is enough for the birthday gift."

Is there any good birthday present that is as good as the ripe raspberry that my husband picks? These days, raspberries are in full bloom on the promenade that I walk every morning. I remember the old story of 'There is a snake in the place of a wild raspberry,' I stand by the side of the road and my husband picks the ripe raspberries from the woods. "Do you want more?" "No thanks. I'll leave something to eat tomorrow."

"Today is my birthday." "How many times is your birthday in a year? When I was a child, my grandmother and my mother scolded me if I was talking about birthday. The North Koreans do not have a birthday party." So my birthday was buried in a word of my husband. However, my husband mentions my birthday for the first time, so I am so shock. I look at my husband. His hair was white and lost his bad temper. How hard was he to feed families?

Rather than having a party or a gift, it is birthdays present that the husband who is picking up a bunch of wild strawberry is besides me.

I am gradually behind in my morning walks that I used to walk with my husband, because my left heap aches as I climb up the hill. There was a time when I wanted to grasp and hit his head that was disappearing without looking back. But now he is looking back, waits and gives a hand to come soon.  

Isn’t it that I disappeared from sight when he looks back? Isn’t he also going away from my sight where I can’t see him forever? Even if I can’t catch up him, I am grateful that I can walk and see his back. My husband's back is like a lamp that lights up a dark night road.

If someone asks, 'Do you want to be with your husband in the next life?' I don’t really want to. The cactus with thorns the whole body, if I gets closer and gives water and cares it becomes be annoying and withered. When it does not take care of it, it tries to attract attention, and it blooms. My husband is as difficult as a cactus that I can’t get close or far to him. I want to live my next life freely like the wind.

We are all dying. I can’t live forever, no matter how I struggle. Do not regret that "you were here yesterday." I am happy to be with my husband even if he is walking far away.

Saturday, July 19, 2014

자살 소동

"혹시 친정엄마가 자살하지 않았어요?"
서울에 사는 지인이 동네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뜸을 한참 들이더니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서울 집에 전화할 때마다 엄마는 절에 갔다고 했다. LA에 사는 사촌이 서울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흘리면서 연락해 보라기에 혹시 
‘엄마에게 무슨 일이?’ 
하는 직감에 전화해서 꼬치꼬치 묻자 두 달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엄마가 세상에 없단다. 그것도 내가 모르고 지낸 두 달 전부터. 화를 내거나 매를 든 적이 없이 나를 사랑하던 엄마를 더는 볼 수 없다니! 허구한 날 화장실에서 울며 지내다 3년 후 첫아이를 낳자 안정을 되찾긴 했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이 사찰 저 사찰로 찾아 헤매는 엄마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니!

"친정엄마의 임종 때 없었고, 쉬쉬하다 두 달 후에나 알려 줬으니 혹시 본인만 모르는 일이 아니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말아요.".
버럭 화를 내려다 갑자기 멀어져 가던 하얀 구급차가 생각났다.

우리가 사는 건물 3층에 딸아이 하나 있는 부부가 살았다. 이 부부는 허구한 날 싸웠다. 물건 내던지는 소리와 여자의 비명, 아이 우는 소리가 이어지다 문이 꽝 닫치고 남자가 나가면 여자는 흐느껴 울곤 했다. 
"남편이 바람난 여자와 살려고 헤어지자고 때려서 죽고 싶어요."
하소연하는 그녀를 우리 엄마가 달래곤 하는 이야기를 숨죽여 엿듣곤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다 건물 앞 하얀 구급차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아줌마가 사는 아파트 문이 훤히 열려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아무도 없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건너 물건 부서지는 소리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상상했던 집안이 궁금해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벽에 묻은 신선한 붉은 핏자국을 보고 섬뜩했다. 수도 없이 긁어댄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은 벽을 따라 이어졌다. 죽음이 임박해서 살려고 애썼던 흔적들인 듯했다. 창문을 닫고 가스를 틀어 놓고 자살한 것이다.

아줌마가 죽고 얼마 후 아저씨는 앓든 이를 뽑아 버린 듯 후련한 모습으로 화장을 곱게 한 여자와 시시덕거리며 건물 앞을 지나다녔다. 훗날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마다 복도에 나와 울던 “아이는?” 
하고 물었던 기억이 퍼득났다.

거의 40여 년이 다 돼가는 옛적 자살 소동이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3층 아줌마의 자살이 4층 우리 엄마에게로 와전되다니. 아동 소설책에 흔하게 나오는 사설탐정이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 이웃집과 일가친척들에게 일어난 온갖 사건들을 두루 참견하고 어찌 해결되는가를 지켜보았기에 망정이지 남의 일에 민감한 동네 아줌마들 입방아에 찧어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