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10, 2009
의사 부인, 화가 부인
Wednesday, September 9, 2009
A doctor's wife, an artist's wife
Thursday, August 27, 2009
철 없는 친구
Wednesday, August 26, 2009
An immature friend
Thursday, July 30, 2009
화가 부부의 특별한 기념일
친구는 자상하게 내가 태어난 해로 돌아가서 음력으로 6월 18일이 양력으로는 7월 17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생일을 축하하며 ‘오랜 세월 친구로 있어줘서 고맙다’는 긴 내용도 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내 생일도 결혼 한 날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 생일 지났네. 우리 결혼한 날이 언제인지 알아?”
"다시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을 거야."
어느 날 한 여유 있는 친구가 그간 속상한 사연을 털어놨다. 생일 잊어버린 남편에게 상기시키고, 분위기 있는 식당을 예약하고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 식탁에 앉아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것이다. 막상 둘이 분위기를 낼라치면 지치고 기분이 나빠 티격태격 싸울 짓을 하느니 아예 포기하겠다며 선언 했단다.
둘 다 화가인 우리 부부의 기념일이란 ‘그림이 팔린 날’이다.
그림이 팔리면 우리는 그동안 챙기지 않고 살았던 날들을 위해 축하의 술잔을 부딪친다. 예전보다 술잔 부딪칠 일이 많아졌다. 잘하면 그동안 밀린 날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올 기념일까지도 앞당길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에게 가장 기뻤던 날은 어려운 시절 그나마 여유 있는 선배 화가가 그림을 사간 날이었다. 화가가 화가의 그림을 인정할 때가 더욱 술맛이 난다. 우리도 전시회를 다니다 보면 사고 싶은 그림이 있다. 어려운 동료나 후배에게 조그만 보탬이 되고자 비싸지 않은 작품을 몇 점 사기도 했다.
그나마 그림이 팔린 날도 별로 차린 것 없는 저녁 식탁을 보며 남편이 빈정거린다.
"그림이 뭐 거기서 거기지. 일단 화가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영광을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거야”
Wednesday, July 29, 2009
A special anniversary for an artist couple
But my husband doesn’t even remember my birthday or our wedding anniversary.
“My birthday already passed. Do you know when our wedding day is?”
Well, maybe it is a bit much to expect someone to convert lunar dates to solar dates, especially when life is hard and busy. Maybe remembering birthdays isn’t a priority.
“I’m never going to celebrate birthdays or anniversaries again,”
one of my friends once said after sharing how upset she had been. She had reminded her husband of her birthday, made a reservation at a nice restaurant, dressed up, and waited at the table—only to feel foolish. Every time they tried to have a special evening, they ended up arguing. So she finally decided to give up on celebrations.
The happiest day for us was when, during hard times, a more established artist bought one of our paintings. It feels extra special when one artist recognizes another’s work. Sometimes when we visit exhibitions, we find works we want to buy too. We've purchased a few affordable pieces to support fellow or younger artists.
Still, even on days when we sell a painting, our dinner table remains simple. My husband jokes:
“Well, at least thanks to your lack of cooking skills, I’ve managed to avoid getting any lifestyle diseases.”
Thursday, July 9, 2009
머리가 큰 우리 아이
옆에 덩치가 나의 서너 배나 되는 백인 여자도 간호사가 아이를 들어 보여주니 반가워했다. 그녀는 내 큰 아이를 보더니 나를 아래위로 쳐다보며 놀라는 표정이다.
"네가 낳은 아이니?”
나의 첫 아이는 그 병원에서 그 주에 가장 큰 아이로 태어났다. 간호사가 아이를 데려와 내 품에 안겨주며 떠나지 않고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서 있었다. 내가 안고 일어나려고만 하면 아이를 떨어뜨린다며 침대에 앉아서 안으라고 성화다. 100파운드도 안 되는 내가 아이를 가누는 것이 불안했나 보다. 퇴원하던 날 간호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크게 난 아이가 자라면서 키가 안 큰다고 한다. 물론 엄마 아빠가 둘 다 작으니 클 리도 없겠지만, 아무튼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춘기가 되면서 자신의 모습에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 키는 작고 얼굴은 크고, 볼에 살이 너무 많고 다리가 굵다고 불평불만이다. 엄마 아빠의 나쁜 점만 닮았다며 원망했다. 9학년이 되자 아이 얼굴엔 여드름이 쫙 깔렸다.
아이를 키우는 내내 옷, 장난감 등등 많은 것을 얻어다 키웠지만, 이제야말로 아끼고 아껴 모은 쌈짓돈을 풀 때가 아닌가 싶었다. 아이와 나는 부지런히 인터넷으로 여드름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좋다는 여드름약은 이것저것 사다 써보게 했다. 치아교정도 했고, 수영팀에도 넣었다. 아이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려고 여름 방학마다 국외 봉사활동도 보냈다. 아이는 갑자기 자기를 위해 돈을 펑펑 쓰며 평상시와는 달리 행동하는 엄마를 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