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0, 2014

마지막은 어떻게

헝클어진 금발머리의 눈물로 가득 찬 푸른 눈동자의 핸섬한 남자가 어두운 퓨너럴 홈에 서있다. 화려한 꽃무늬 옷을 입고 관 속에 누워있는 나이 든 여자를 넋을 잃고 들여다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저무는 저녁노을을 받아 몹시 슬퍼 보였다.

맨해튼의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서른이 넘도록 뉴욕 밖을 나가 보지 못할 만큼 바삐 살았다. 아르바이트하며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느라 부족한 장례 비용을 와이프의 언니에게 꾸는 과정에서 불화가 생겨 이혼했다.

또한, 그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여 스토리지에 넣어 보관하는 비용도 솔찮게 내고 있다.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그의 등이 어찌나 애처롭고 작아 보이는지,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큰 바위 덩어리 같은 짐을 지워 놓고 간 그의 부모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외아들인 그를 무척 사랑했다고 하는데.

그의 돌아가신 엄마의 통장엔 한 푼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엄마의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아 두 달 치 렌트비를 내가며 유품을 정리한 후 또 다른 스토리지에 보관했다. 그가 언제나 장례 빚을 청산하고 기반을 잡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꼭 부모가 죽어서 많은 재산을 남길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장례 비용과 그들이 살다간 흔적을 치울 수 있을 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죽기 전, 건강할 때 집안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고 정리해서 뒤에 남은 자식들이 최소한 버려야할지 보관해야할지를 골머리 썩지 않게 해 주던지.

오래전 신문에서 읽은 기사 내용이 떠올랐다. 어느 나이 든 노인이 죽기 전에 자신이 죽고 난 후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는 퓨너럴 홈까지 운전해 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차 안에서 죽었다는 연극무대와도 같은 내용이다.

나는 죽기 전 퓨너럴 홈까지 운전해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차갑고 어두운 땅 한 자리 차지하고 묻히고 싶지도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쓸만한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화장해서 내가 자주 가던 숲길에 뿌려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알려 부조 받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혹시라도 떠나가는 나를 우연히 누군가가 보러 왔다면 마지막 가는 길에 와인이 곁들인 따뜻한 식사 대접을 해 줬으면 한다. 관은 가장 싼 나무 널빤지라면 더욱 좋고 늙은 나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관 뚜껑은 열지 말았으면 한다.

쓰레기로 남겨질 나를 치울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남은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않게 건강할 때 정리해서 버릴 것 버리고 장례비용만은 부족하지 않게 남겨야겠다. 

Friday, September 19, 2014

How is the last?

A handsome man with blond hair and blue eyes filled with tears was staring at an elderly woman lying in a coffin wearing colorful floral dress. The evening glow came through the window he looked very sad.  

Born in a poor family in Manhattan, He leads a busy life. So he didn’t have a chance to go out of New York until he was over 30. He got a part-time job, got a scholarship, graduated from college, and got married. However, a divorce occurred in the process of borrowing money from his wife 's sister to pay for his father' s funeral.  

He has a grandmother who died. It also expends the cost of organizing the remains of the grandmother and keeping them in storage. His back, crying for his mother's death, looked so pathetic and small.

There was not a penny in his mom bank account. But he does not want to erase his beloved mother's memories. He paid for a two-month rent and arranged the mother’s item and keeps them in another storage. Will he be able to clear funeral debt and build up his base and get out of poverty?

I do not have to leave a lot of money, but I should not leave at least have enough funeral expenses and enough to get rid of the traces of my lives? Or before I die, when I am healthy, I dare to discard the unnecessary things in the house and sort them out.  

The articles I read in the newspapers a long time ago do not leave my mind. An old man didn’t want to disturb anyone after he die. He cleaned up everything. And it is like the theater stage that he drove to the funeral home, parked his car in the parking lot and died in the car.

I think I will not be able to drive to the funeral home before I die. I do not want to be buried in a cold, dark ground. If it is possible, I would like to give my useful organs to the people who need them and scatter the ashes on the favorite forest.

Never let people know and if anyone comes to see me by chance, I would like to have a warm meal with wine on my last way. The coffin is the cheapest wooden plank. I do not want to open the coffin lid because I do not want to show my old self,

It would cost a lot of money to clean me up. I should leave the not to be short of funeral expenses.

Saturday, September 13, 2014

여름의 끝자락

"올 여름장사 다 틀렸구먼."
남편이 여름 내내 투덜댔지만 어쩌겠는가? 날씨가 덥지 않았으니. 살다 살다 이렇게 선선한 여름은 처음이다. ‘지구가 병들었나?’

나름대로 지구를 보호한답시고 에어컨도 없고 가스와 물도 아껴 쓰고 전기 코드도 빼놓고 사는데. 식탁 위의 음식은 남김없이 뱃속으로 쓸어담아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며 한 몫 거두는데도 지구는 정말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인가?

여름장사도 장사지만 이가게 저가게 기웃거리며 길을 걷다가도 고객이 뜸한 가게를 보면 남의 일이 아닌 듯 마음이 쓰리다. 왜냐? 허구한 날 물건 사고파는 일보다 그날 하루 메꾸어야 하는 돈이 얼마인가를 계산하고 준비하며 동분서주하던 장사꾼 아버지 딸로 태어나 자란 탓이다. 

돈이 잘 벌리면 투자하고 메꾸느라 돈을 돌리고 또 투자하고 메꾸고를 반복하던 아버지를 보며 나는 절대로 장사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많이 번 만큼 많이 쓰고 투자를 멈추지 않으니 항상 돈에 쫓기는 듯 불안했다.

"부동산은 우리를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우리가 부동산을 배반 (처분)하면 모를까.’ 부모가 저세상으로 가고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아이들이 친구가 멀리해도 한자 풀이대로 ‘不動産 (움직이지 않는 재산)만은 항상 제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말씀하던 아버지는 돈이 돌면 오로지 부동산에 투자했다. 장사가 안되면 어렵게 구매한 것을 처분하기도 했지만. 그러니 동네 저잣거리의 장사가 잘되고 안됨이 남의 일이 아닌 듯 본능적으로 걱정이 된다.

한여름 내내 차가운 바닷물이 데워지기를 기다렸다. 늦여름,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보며 90도가 넘는 날을 기다렸지만, 전혀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88도인 8월 마지막 주중,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바닷가로 달렸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바다를 찾았는지 모세비치로 들어가는 다리가 꽉 막혔다.

‘바다도 병든 것일까?’ 간장 끓일 때 생기는 누르스름한 거품을 잔뜩 안은 파도가 쉴새 없이 밀려왔다. 물에 한번 몸을 담그고 더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종아리만 파도에 맡기고 주위를 둘러봤다. 여자들 대부분이 가슴을 들어 내놓고 서성대고 옷을 홀딱 벗은 늙은이가 순찰경찰의 경고를 받고 있다. 내놓을 만한 그럴싸한 몸매라면 나도 젖은 수영복을 벗고 드넓은 바닷가를 홀가분하게 걷고 싶다. 그럴싸한 몸매가 아니라 경고받을 일도 없겠지만, 아쉽게도….

‘올여름은 이렇게 여름답지 못하게 정녕 가는 것인가?’ 
아쉬움에 떠나가는 여름을 붙잡고 매달리기라도 하는 듯 오랫동안 따뜻한 모래밭에서 뒹굴었다.  

잠깐, 바다 산 강들이 변함없이 늘 나를 기다리며 반기는 것이 이것들도 부동산이라 그런가?

Friday, September 12, 2014

The end of summer

"This summer's business is wrong.” My husband grumbled all summer, but what can I do? The weather was not hot. I have never lived in such a cool summer. 'Is the earth sick?’

I am protecting the earth my own way. I do not have an air conditioner. I save gas electric and water. Even though eat all the food on the table to reduced as much as possible, but Is the earth really suffering?

When I look at the shop that has few customers while I am walking around the street, I feel like it is not the other’s business. Why? It is because I grew up to be a daughter of a merchant father who was busy calculating and preparing some money to pay for the day.

Seeing my father repeatedly investing and making money to make up for investing, I vowed never to do business. He spent as much as he earned and he didn’t stop investing. He always seemed to worry about being chased by money.

“Real estate never betrays us. If we betray (sell) property, do not we? When the parents died and the husband abandoned his wife and friends were gone, only real estate (immovable property) always waits for us in place." My father who invested only in real estate whenever he had money said.

He even sold his hard purchased if his business failed. Therefore, I concern instinctively as if it’s not someone else’s business to do well and bad.

Throughout the summer, I waited for the cold seawater to warm up. In late summer, watching the weather forecast carefully and waited for a day that was over 90 degrees, but there was nothing. I couldn’t wait to come. I ran to the beach on the last week of August, which was 88 degrees. Everyone seemed to go beach with the same idea as me. The bridge to Moses Beach was blocked with many cars.

'Is the sea sick?' The waves filled with the yellowish bubbles were pouring all the time. I did not want to sock myself in the water. Only the calf was left on the waves, when I looked around, many women open their breasts and hang around.  Stripped old men were being warned by police patrols. I would like to take off my wet bathing suit and walk freely on the wide beach if I can afford it. Unfortunately I am not a good shape.

I have been hanging in the warm sandy field for a long time as if I were holding onto the summer away. Wait, the sea, mountain and rivers invariably await me all the time, are they real estate too?

Saturday, September 6, 2014

뚫개와 무수리

아침부터 비가 오다 내 개인전 오프닝 시간에 맞춰 날씨가 화창하게 개였다.
"오프닝 날씨가 이 정도는 되야지!"
남편에게 한마디 던졌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남편의 전시회 때마다 거의 날씨가 좋지 않았다. 날씨 좋은 샌프란시스코 산호세에서 전시했다. 걱정 붙들어 매고 있다가 떠나던 날 뉴욕의 폭설로 비행기가 한 대도 뜨지 않았다. 오밤중에 눈 속을 뚫고 4시간 걸리는 워싱턴을 9시간 운전해 가서 간신히 비행기를 구걸하다시피 얻어 타고 갔다. 충혈된 눈으로 오프닝으로 직행했다.

가장 추운 기록을 남긴 겨울 오프닝, 물난리 난 오프닝, 본인 말로는 용띠라서 물을 부른다나. 어려운 시절 직장이라고 구해 처음 출근한 가게 지하실에 물이 차 온종일 물 푸다 왔다고 투덜 되지를 않나, 친구 집에 모처럼 초대받아 갔더니 하수구가 막혀 도와 달라지를 않나. 

뒤뜰에서 바비큐 하는 날 비가 와서 비닐을 치고 우중 파티도 했다. 우산 쓰고 고기 굽고 비닐 위를 내리치는 빗소리 들으며 마시는 와인 맛은 그야말로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아무튼, 남편 (이일, 어느 독자 말로는 2 1) 이름 그대로 가는 곳 마다 이일저일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듯하다. 스튜디오엔 하수구 뚫는 연장이 종류대로 즐비하다. 그래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 ‘뚫개리’다. 평화롭게 살던 나도 결혼 후부터는 남편의 운명에 발맞춰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아예 뒤처리용 무수리가 됐다.

무수리인 나의 오프닝에 비가 오다 날씨가 화창하니 반색할 수밖에.

멀리 코네티컷에서 기차 타고 지하철 갈아타며 여러 사람에게 물어물어 나의 오프닝에 찾아왔다는 독자의 이야기를 쓰려다 삼천포로 너무 멀리 빠졌다. 아무튼, 6시부터 주차할 수 있는 갤러리 문앞에 세워 놓은 차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동양사람이 드문 트라이베카 (Tribeca)에 동양여자가 우산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사용하지 않는 갤러리 문을 열려다 실패, 되돌아가려는 순간, 직감에 ‘내 독자다.’ 차에서 내려 뛰어가 잡았다.

자그마하고 인상이 선한 독자다. 신문으로만 내 글을 읽다 용기 내 먼 길을 왔단다. 매우 고맙고 반가웠다. 일 년 전부터 신문에 난 내 글을 읽는다며 예전 글을 읽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내 블로그에 가면 다 읽을 수 있다며 블로그 주소를 e-메일 해 줬더니 답장이 왔다. 
"아이가 사탕 한 개 아끼면서 먹었는데 갑자기 사탕이 박스로 생긴 기분이예요."
글도 달콤하게 잘 쓰는 독자다.

‘뭘 좀 아는, 뭔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몰라도 독자들은 나를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 이 무수리는 움찔한다.

Friday, September 5, 2014

Drain cleaner and maid

It was raining in the morning, and the weather cleared brightly in time for the opening. “This is the weather for the opening.” I said to my husband with joy.

I do not know if it was a coincidence, the weather was almost bad every art exhibitions of my husband. Even when it exhibited in the nice San Jose in San Francisco, the heavy snow in New York didn’t flight any plane. During the middle of the night, we drove through Washington for nine hours, which usually takes four hours. We barely begged for the plane and go straight to the opening with bloodshot eyes.

The winter opening with the coldest record, the flood opening, he calls water because he was born in the year of the dragon. He was complaining that he had been pumping water all day long in a basement of the store, which he first day to got to work in difficult times. And the drain was blocked and he helped it, when we were invited to friend's house too.

Anyhow, my husband seems to have been destined to do work everywhere he goes. In the studio, there are many kinds of tools for digging drains. So His nickname is a digger. After marriage, as I arranged things in line with his fate I became a maid.

It felt good to stop raining on my opening day and be sunny. 

I was too far away to try to tell the story of a reader who had come to my opening from . Anyway, I was sitting a car in front of the gallery and looked out. As soon as an Asian woman tried to open a gallery door, I had a sense of being a reader and I jump out of the car and caught her.

She is a good impressive and a kind-hearted reader. She has come a long way in her courage as she read only my articles in the newspapers. I was very grateful and please. She has been reading my articles in the newspaper for a year and she regret not having read the old article. I e-mailed my blog address to see my last post and reply came. 'I‘ve been eating e a candy, and all of a sudden I feel have a box of candy.’ She writes well sweetly. 

Whenever I meet readers who know something, someone different from the average person, I feel like I don’t know myself, but I am thrilled at the idea that they are penetrating me.

Saturday, August 30, 2014

니만 알고 있으래이

"니만 알고 있으래이." 
나만 알고 있기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일을 툭하면 비밀인 양 입버릇처럼 떠들던 나이 지극한 지인이 한국으로 떠난 후 주변이 정리된 듯 조용해졌다.  

이미 입에서 굴러떨어져 나간 말은 내 것이 더는 아니다. 그 사람이 그의 입으로 말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면 아예 꺼내지 말고 어느 영화에서처럼 나무에 뚫린 구멍에 대고 토한 후 진흙으로 봉하던지. 일단 뱉어진 말을 
"꼭 니만 알고 있으락 했는디 와 캤노." 
따져바짜 또 다른 니만 알고 있으래이의 반복이다.

모두다 고만고만하고 그저 그런 삶을 사는 이 나이에 친구 대여섯 명이 함께 잘 지내다가 누구는 빼고 누구는 끼워주며 왕따를 한다. 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작 빠진 사람들은 바빠서 생각지도 않는 일을 무슨 피로 맹세한 동지끼리 기밀이라도 누설한 양 쉬쉬한다. 끼워주지 않아도 전혀 섭섭하지 않은 그렇고 그런 모임을 편하고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가면 되지 누가 뭐래. 오히려 쉬쉬하는 것이 ‘뭔가 있긴 있나?’ 잠깐 의심이 들었지만, 있으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자기 인생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데.

“뉴욕이 발칵 뒤집힐 일이 곧 터질 거야.’"
자신들의 이혼을 전쟁 포고하듯 거창하게 선포했다. 뉴욕은 여전히 조용했고 사람들은 이미 그들 부부의 잦은 싸움으로 ‘예상했던 일이 터졌나 보다’며 무덤덤했다.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하며 오히려 자신들의 속이 뒤집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떠나온 모국에서 남의 일에 거품 무는 습속과는 달리 조그만 일이라도 다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바쁜 뉴욕생활에서 남의 골치 아픈 일에 엮이길 원치 않을뿐더러 관심을 가질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혹시 누가 나를, 나에게, 나에 대해서…" 
다 본인의 착각이다.

누가 뭐랬냐고? 왜 쉬쉬하다 ‘네가 그랬니, 내가 그랬니.’ 하며 난린지. 개인의 문제와 고민은 각자 해결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는 즐거움을 나눠야지 우리 나이에 누구 눈치 보며 쉬쉬하며 불안한 만남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친구야, 그동안 내가 했던 이말 저말 다른 사람에게 다 전해도 난 상관없다. 너도 너 나름대로 사연과 사정이 있어서 ‘니만 알고 있으레이’라는 토를 다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아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안 하고, 할 말은 네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다."

그런데 나는 뭘 그리 잘났다고 이렇게 부질없는 이야기를 거창하게 긁적거리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