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13, 2025

늙어도 여전히 봄처럼

해가 질 녘, 노을빛에 취해 맨해튼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와우, 옷 정말 멋지게 입으셨네요.” 뒤에서 어떤 백인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대단한 멋쟁이였다. “그쪽이야말로 정말 멋진데요.” 내 대답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우리 언제 만나서 차라도 한잔하면 어때요? 전화번호 좀 줄 수 있어요?”

그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그녀에게 번호를 건넸다. 혹시 레즈비언일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남편의 엉뚱한 참견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디자이너로, 오래전 유대인 의사였던 남편과 이혼했다고 했다. 이혼 사유는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보다 본가의 부모 형제를 늘 우선시했기 때문이란다. 타인의 개인 사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그녀에게 깊은 흥미를 느꼈다. 그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매력적인 싱글이었다. 옷 한 벌, 소품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겹겹이 매치한 차림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창조적인 예술 작품 같았다.

“그렇게 매력적인데, 남자들이 가만두지 않겠어. 뒤에서 추근대며 따라오진 않아?” 내 질문에 그녀는 덤덤하게 답했다. “난 이제 욕망이 없어. (I have no desire.)”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속설이 있다. 직장에 다니며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자신의 외모는 돌보지 못하는 젊은 여성들을 보곤 한다. 애쓰며 살림을 보탠 아내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외모를 지적하며 부끄러워하는 철없는 남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귀찮아서, 혹은 살이 쪄서 ‘굳이 애쓸 필요가 있나’ 하며 스스로를 놓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편안한 삶에만 안주하다 보면 마음마저 습관적으로 안일함만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여자가 로맨스를 잃으면, 여자로서의 매력도 사라지는 법이란다.” 생전에 친정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건강을 철저히 챙기시며 96세의 나이까지도 주변에 여자 친구가 많았던 아버지.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 누워 마치 본인은 영원히 살 줄 알았다는 듯 물으셨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니?” “그래도 아버지는 원하는 삶을 원 없이 사셨잖아요. 죽음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거니 받아들이셔야죠.” 누워 계신 아버지에게 철 좀 들라는 식으로 툭 던진 내 ‘요 주둥이’가 지나고 보니 못내 아프다.

사람들은 주변의 이별을 보면서도 정작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이겠지만, 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는 나를 아름답게 가꾸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며 살다 가고 싶다. 늙기 전에는 젊음이 좋은 줄 모르고, 죽기 전에는 삶이 고마운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한다. We should not giv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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