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20, 2025

작은 것에 대한 예찬론


나는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작은 나를 싫어하겠지만, 키 작은 우리 친정아버지도 나와 같았다. 친정 언니가 결혼 한다고 데려온 남자는 키도 컸지만 덩치가 너무 컸다. 그를 올려다보며 인상 쓰던 아버지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작은 키로 험난한 세상을 단단히 버티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키 큰 남자의 시선이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건 아닐까? 사람 됨됨이도 보지 않고 무조건 키 큰 사람이 싫어지는 심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크면 내가 숨 쉴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나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자리를 뜨고 싶다.


나는 길가에 핀 크고 화려한 꽃보다는 앙증맞은 작고 소박한 꽃들을 좋아한다. 화려한 꽃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핀 작은 꽃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애처롭다. 작은 것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애착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큰 것은 그냥 스쳐도 작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멈춰서서 자세히 살피며 말을 걸고 싶은 심리는 아마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난 굵은 선보다 가는 선을 좋아한다. 그래서였을까? 판화 중에서 가는 선을 기본 기법으로 화면을 만들어 가는 동판화를 전공했다. 나의 작은 손으로 가는 선이 그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작은 캔버스 위에 그릴 때 더 집중하고 파고들어 내 마음을 전달하면 애정 어린 작업이 나온다. 작고 가는 선으로 만들어진 내 작품은 거창한 장소에 걸리는 것보다는 화장실 가는 통로라던가 복도 끝 벽에 걸리면 작품은 제자리를 찾은 듯 차분해진다. 볼일 보러 가면서 본 듯 만 듯 스치거나 긴 좁은 복도를 지날 때 누군가가 슬쩍 봐주면 제자리를 조용히 지키던 그림은 밝은 표정으로 반긴다. 


내 이름 영어는 전부 소문자 sooim lee 다. 얼마 전 갤러리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이름을 왜 소문자로만 쓰느냐? 는 질문을 받았다. 그전에도 서너 번 내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대문자보다는 소문자를 선호해서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 않는 작은 모습인 나에 대한 합리화인 것 같다.

Ode to Small Things

I do not like tall and large-built men. Of course, they may dislike someone as small as me, but my father, who was also short, felt the same way. I clearly remember the frown on his face when my older sister brought home the man she was going to marry—a man not only tall but also overwhelmingly large. Perhaps the gaze of that towering man looking down at him pricked my father’s pride, a man who had firmly endured the hardships of life with his small frame. Maybe I inherited this instinctive dislike of tall people from him, a tendency to dismiss them without even considering their character. When someone is too big, I feel as if my breathing space is being taken away. It gives me an oppressive sense of being crushed, making me want to leave the room.


I prefer small, modest flowers to large, extravagant ones by the roadside. The dazzling blooms easily capture people's attention, while the tiny, unassuming ones seem to wait patiently for someone to notice them, evoking a sense of melancholy. When I see something small, my heart swells with affection, drawing me closer. I can pass by large things without a second glance, but small ones make me stop, examine them closely, and even feel the urge to speak to them—perhaps because I relate to them.


I prefer fine lines over bold strokes. Maybe that’s why I specialized in etching, a printmaking technique that uses delicate lines to build an image. When I carve fine lines with my small hands, I feel a sense of exhilaration. Working on a small canvas makes me more focused, allowing me to pour my heart into my work. My creations, formed through fine, intricate lines, do not belong in grand exhibition halls. Instead, they find their rightful place in quiet corners—perhaps along a hallway leading to a restroom or at the far end of a corridor. If someone notices my artwork in passing, just for a brief moment, the piece, which had been silently keeping its place, will greet them with a quiet smile.


My English name is written entirely in lowercase: sooim lee. A woman I met at a gallery recently asked, "Why do you write your name in lowercase letters?" Others, too, have questioned whether it was a mistake. But I simply prefer lowercase letters. Perhaps it is my way of justifying my existence—small, subtle, and barely noticeable, just like me.

Thursday, March 6, 2025

가자미식해와 낫또


“네가 이렇게 음식 솜씨가 없으니, 아비가 성인병이 없는 거야.”

나만큼이나 음식 솜씨 없는 시어머니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는 맛없다는 표현을 돌려서 말하셨다. 시어머니 말처럼 내가 만든 음식은 내 남편 이외는 아무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다. 물론 설탕도 참기름도 조미료도 아예 집에 없다. 시어머니는 LA에서 오실 때마다 혼다시를 가지고 오셔서 

“맛이 통 나지 않으니, 이거라도 음식에 조금씩 넣어라.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만큼 괴로워한다. 남편은 아무리 음식 맛을 불평해도 내 실력이 나아지지 않자 포기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같은 소리를 한다. 

“음식 솜씨 좋은 부인과 사는 남자들이 나이 들어서 성인병 때문에 약들을 한 움큼씩 먹는데, 나는 마누라의 희한한 요리 솜씨 덕에 건강을 유지하네. 복도 가지가지야.”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되잖아. 적게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산데요.”

음식도 못하는 주제에 나는 잘났다고 빼놓지 않고 토를 단다.


나도 잘하는 음식이 있다. 음식 솜씨 없는 함경도 시어머니가 그나마 잘하는 것이 가자미식해다. 좋아하는 음식이라 옆에서 따라 하다가 전수받았다. 나는 시어머니처럼 거창하게 식해를 만들지 않는다. 가자미를 사다가 지져 먹고 구워 먹다가 남은 가자미를 통째로 소금을 듬뿍 붓고 냉장고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살이 물러진 것 같으면 잘라서 소금 다시 붓고 또 냉장고 구석에 밀어 넣는다. 그러다 가자미 삭힌 것을 잊어버려 한 달이 지난 후 허겁지겁 메조 밥을 만들어 고춧가루와 다진 생강과 마늘을 넣어 가자미와 섞어 놓고 무채를 굵직하게 썰어 버무린다. 맛없는 음식만 먹던 남편과 나는 그나마 맛있다고 잘도 먹는다. 저희끼리 얽히고설켜 삭혀져 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나의 엉뚱한 아이디어다. 내가 만든 맛없는 김치 종류들은 냉장고 구석에서 세월아 네월아 신세가 된다.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면 김치찌개용으로 변신한다.


내가 또 잘하는 것이 낫또다. 겨울만 오면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 놓고 된장국에 한 수저 듬뿍 넣어 끓인다. 남편은 콩 씹는 맛이 일품이라며 무척 좋아한다. 콩을 하루 동안 불린다. 불린 콩을 압력밥솥에 밥처럼 한다. 물기가 없는 상태의 뜨거운 콩에 볏짚 같은 재료가 없으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낫또 두 팩을 넣어 섞는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방 스팀 위에 낡은 담요 서너 장을 덮고 하루 이상 처박아 두면 진이 찐득찐득 올라온다. 남편은 가자미식해와 낫또를 잘하면 요리 솜씨가 대단한 거라며 나를 띄운다. 속셈은 낫또와 식해만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수시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제 낫또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식혜 만들 때가 지난 것 같은데?” 

남편은 내 표정을 살피면서 은근히 만들라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야만 하는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김치 쪼가리처럼 찌그러져 없는척한다.

Gajami-sikhae and Natto

"Since you're so bad at cooking, your husband doesn’t have any adult diseases."

My mother-in-law, who is just as bad at cooking as I am, tasted the food I made and indirectly expressed. Just as she said, no one but my husband can eat the food I make. Of course, I don’t even keep sugar, sesame oil, or seasonings in my kitchen. Every time my mother-in-law visits from LA, she brings Hondashi with her.

"Your food has no flavor at all, so at least add a little of this—just while I’m in New York."


For me, stepping into the kitchen feels like a cow being dragged to a slaughterhouse. My husband has long given up complaining about my cooking, realizing my skills will never improve. Now, he says the same thing as my mother-in-law.

"Men who marry good cooks' wives end up taking handfuls of pills for adult diseases when they get older, but thanks to your strange cooking skills, I stay healthy. Luck comes in all forms."

"You only need two meals a day anyway. They say eating less helps you live longer and healthier."

Even though I’m terrible at cooking, I never fail to argue back as if I know better.


But there are a couple of dishes I do make well. My mother-in-law, who is from Hamgyong Province and also lacks cooking skills, at least knows how to make gajami-sikhae. Since I like the dish, I learned it by watching her. However, I don’t go through the elaborate process she does. I simply buy flatfish, grill or fry it, and when there’s any left over, I cover it generously with salt and shove it into the back of the fridge. Once the flesh starts to soften, I cut it up, add more salt, and push it back into the fridge. Sometimes, I forget about it entirely, and after a month, I hurriedly make mejo rice, mix it with red pepper powder, minced ginger, and garlic, and then cut the radish into thick pieces and mix it. My husband and I, who are used to eating my tasteless food, actually enjoy this dish. My logic is that, since everything is left to ferment together, the flavors naturally deepen. The tasteless kimchi I make, on the other hand, get neglected in the fridge for ages. When they start smelling too sour, they get repurposed into kimchi stew.


Another thing I do well is making natto. Every winter, I make and store it in the freezer, adding a generous spoonful to miso soup. My husband loves the chewy texture of the soybeans. First, I soak the soybeans for a day. Then, I cook them in a pressure cooker like rice. While the beans are still hot and without any excess moisture, I mix in two packs of store-bought natto, since I don’t have straw to use as a starter culture. I cover the container with several old blankets and leave it on the steam radiator in a draft-free room for over a day until the sticky strings appear.


My husband insists that being able to make gajami-sikhae and natto is proof of great cooking skills and constantly praises me. His real motive, of course, is to make sure I keep making them.

"Isn’t it about time to make natto? I think it’s been a while since you made sikhae."

Watching my expression carefully, he subtly hints that I should make them again. But since I only cook when I feel like it, I shrink back like a neglected piece of kimchi hiding in the fridge, pretending I don’t exist.

Thursday, February 20, 2025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쩜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산책해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갑자기 눈이 쏟아져 쌓인 날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도어맨이 말했다.

“아침에 산책하지 않으면 종일 몸이 찌뿌둥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요.”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산책한다. 눈 오는 날은 세상 소음이 눈에 덮어 고요하다. 눈 위를 걷는 내 발자국 뽀드득 소리만 들린다. 비 오는 날은 비에 젖은 숲 냄새 맡으며 빗물에 씻겨 내려간 깨끗한 인적 없는 길을 걷는 맛이 상쾌하다. 흐린 날엔 사색에 잠긴 철학자라도 되는 양 걷는다. 화창한 날, 햇볕 받은 몸은 늘어져 바람에 실려 가듯 걷는다.


일 년 중 며칠 없는 눈 오는 날은 산책 후 야외 자쿠지 사우나 탕에 들어가 푹 잠기고 싶다. 마침, 친구가 눈이 꾸무럭거리며 오려고 발버둥 치던 날, 찜질방에 가자고 했다. 40년 전 친구가 미국에 오려고 준비하던 중 이태원에 가서 쇼핑하다가 나의 친정아버지를 만났다. 내 아버지는 무척 상냥한 사람이다.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예쁜 여자에게는 더욱 친절하시다. 두 사람이 어떻게 죽이 맞았는지 미국에 가면 우리 딸에게 연락해 보라고 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도 친정아버지 닮아 상냥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싹싹하다. 한자리 떡 차지하고 앉아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아버지가 소개해 준 친구는 어딜 가나 모두와 친해질 만큼 사교적이다. 

“나 몸이 찌뿌둥해. 찜질방 가자?”

찜질방 갈 기회가 없는 나는 눈 오는 날의 사우나 탕을 상상하며 두말하지 않고 친구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찜질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 잘못 왔구나.’ 했다. 시설이 낙후되어 깨끗하고 산뜻한 맛이 없다. 뭔가 구질구질하달까? 이왕 왔으니 어쩌겠는가. 지저분한 곳은 시선을 피하고 대충 샤워하고 온돌방에 들어가 누웠다. 등을 지졌다. 몸이 가뿐해졌다. 배를 채우고 다시 소금방 무슨 방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방들을 친구 따라 돌아다녔지만, 온돌방이 제일 좋았다. 


오래전 한국 여행길에, 사찰에 머문 적이 있다. 뜨끈뜨끈 끓는 온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 오래 푹 자다 일어난 듯 겨울 여정의 피로가 다 풀려 몸이 홀가분했다. 매서운 산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눈길 위에 새겨진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된장국 냄새가 피어나는 사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심심한 간으로 고유한 맛을 그대로 살린 된장국에 감자 졸임과 고추나물의 간소한 상차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또 그곳으로 가고 싶다.

Rain or shine

"How do you go for a walk every single day? Even in this cold weather?"

It was a day when snow had suddenly piled up. As I returned from my walk and opened the door, the doorman spoke to me.

"If I don’t take my morning walk, I feel sluggish and unpleasant all day."


Rain or snow, I take a walk every day. On snowy days, the world’s noise is muffled under the snow, leaving only the crisp sound of my footsteps. On rainy days, I enjoy the fresh scent of the wet forest and the clean paths washed by the rain. On cloudy days, I walk as if I were a philosopher lost in thought. On sunny days, I stroll as if my body, soaking in the sun, is floating on the breeze.


On the rare snowy days of the year, I long to soak in an outdoor jacuzzi after my walk. One day, when the snow seemed hesitant, as if struggling to fall, a friend suggested we go to a jjimjilbang. 40 years ago, when my friend was preparing to come to the US, she went shopping in Itaewon and met my father. My father was a very kind man. Like most men, he was especially friendly to pretty women. Somehow, they got along well, and he even gave her my US phone number, and that’s how we became friends.


Like my father, I am friendly, but only to those I like. If someone sits in one spot with a stiff expression, I don’t even bother talking to them. The friend my father introduced me to is so sociable that she becomes friends with everyone no matter where she goes.

"I feel sluggish. Let’s go to the jjimjilbang."

Since I rarely get the chance to go, I imagined soaking in a steaming sauna on a snowy day and followed her without hesitation.


However, the moment I stepped into the jjimjilbang, I realized I had made a mistake. The facilities were outdated, lacking the cleanliness and freshness I had hoped for. It felt somewhat grimy. But since I was already there, I decided to make the best of it. Avoiding the unclean areas, I took a quick shower and lay down in the ondol room, warming my back. My body felt lighter. After eating, we wandered through various rooms—the salt room, and others I can’t even remember—but the ondol room was my favorite.

Years ago, while traveling in Korea, I once stayed at a temple. I briefly lay down on the hot ondol floor, and when I woke up, I felt as if I had slept deeply. The exhaustion from my winter journey had melted away, leaving my body refreshed. Bracing against the biting mountain wind, I followed footprints in the snow into the temple’s dining hall, where the aroma of doenjang soup lingered. The simple meal of mild, yet deeply flavorful doenjang soup, braised potatoes, and lightly seasoned chili greens was unbelievably delicious. I long to return to that place again.

Thursday, February 6, 2025

소피아 딸


오래전 일입니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무언가를 보는 순간, 희미함을 뚫고 며칠 전 일처럼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 잡는 기억 말입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핍홀로 내다봤습니다. 소피아 딸 지니가 서 있었습니다.  

“왠일이니?” “아줌마 집에 들어가도 돼요?”

“엄마가 찾지 않을까?” “엄마는 아침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갔어요.”

“어린 너를 두고 어딜 가? 아빠는?” “어제 고모와 함께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았어요. 고모가 나를 데리러 왔나 봐요.” 


세상이 온통 눈으로 수북이 쌓인 어느 날,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이국적인 여자가 내가 사는 건물 안을 기웃거렸습니다. 불안과 초조로 방황하는 애처로운 그녀의 눈빛이 나와 마주쳤습니다. 사시나무 떨듯 근심으로 가득 찬 시선은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눈 덮인 시베리아를 헤매는 주인공 라라를 연상시켰습니다. 


“한국에 파견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 퀸스에 살았어요. 신문사에서 일하던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4년 전에 시집이 있는 오하이오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시누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을 다녔지요. 제가 싫다는 데도 부득부득 시누 부부가 아이를 자꾸 입양하겠다는 거예요. 아이를 뺏길 것 같아 겁이 났어요. 마침, 온라인으로 아파트 렌트한다는 광고를 보고 야밤에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도망치다시피 왔어요.”

이사 오자마자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네 고모가 너를 예뻐했다며.”

“아니요. 때리고 야단쳤어요. 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저는 아줌마가 좋아요.” 

한숨 쉬며 말하는 아이의 큰 회색 눈이 물기로 반짝였습니다.

“아이고, 불쌍한 것.” 

나도 갑자기 눈가가 젖고 목멘 소리로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다섯 살인 아이는 백인 아빠를 닮아 금발 아래 회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른 흉내를 내는 제스쳐와 말씨로 쉬지 않고 떠들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 났습니다. 핍홀로 내다보니 아이 엄마 소피아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 지니를 보지 못했나요?” “우리 집에 있는데요.” 

“너 여기서 뭐 하니? 얼마나 찾은 줄 알아. 말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문 열고 나가면 어떻게.”

아이는 어른처럼 꼰 다리 위에 손으로 턱을 바치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밖에 나갔다 오셨나요? 고모가 오셨다면서요?” 

“고모요? 우리가 어디 사는 줄도 모르는데 고모가 어떻게 와요? 저는 온종일 집에 있었어요.”

나는 누구 말이 진실인지 헷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녀를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훌쩍 이사 갔습니다. 어른들의 불안한 틈바구니에서 자란 아이의 눈물 젖은 회색 눈동자가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떠오르곤 합니다.

Sophia's Daughter

It happened a long time ago—so long that the memory had faded. But sometimes, a single sight can pierce through the haze, bringing the past back as vividly as if it happened just days ago.

There was a knock at the door. I looked through the peephole. It was Sophia’s daughter, Ginny.

“What brings you here?”
“Can I come in, ma’am?”
“Won’t your mother be looking for you?”
“She left this morning with a big suitcase.”
“Where would she go, leaving you behind? What about your father?”
“He went out with my aunt yesterday and hasn’t come back. I think she came to take me away.”

It was a day when snow had piled up thickly everywhere. A tall, strikingly featured Korean woman was peering, peering inside the building I live anxiously. Her distressed, restless eyes met mine—filled with a desperate plea for help. She reminded me of Lara from Doctor Zhivago, wandering the snow-covered Siberian wilderness.

“My husband was assigned to Korea for work, and that’s where we got married. We moved to Queens, New York. He worked at a newspaper, but suddenly fell ill, so four years ago, we had no choice but to move to Ohio, where his family lived. I had to leave my daughter with my sister-in-law while I worked. Even though I protested, my sister-in-law and her husband insisted on adopting my child. I was terrified they would take her away. Then, I saw an online ad for an apartment rental, and in the middle of the night, I fled with my husband and daughter.”
She had told me this story when she first moved in.

“Your aunt cared for you, didn’t she?”
“No. She scolded me and hit me. Do you know how hard it was to get here? I like you,”
The little girl’s large gray eyes shimmered with tears as she let out a sigh.
“Oh, you poor thing.”
Overcome with emotion, I pulled her into my arms. She was only five years old, but with her golden hair and round gray eyes—just like her white father—she spoke and gestured like an adult, chattering endlessly.

Then, there was another knock at the door. I looked through the peephole and saw her mother, Sophia, standing outside with an uneasy expression.
“Have you seen Ginny?”
“She’s here.”
“What are you doing here? Do you know how long I’ve been looking for you? You can’t just slip out without saying a word.”
The little girl sat cross-legged, resting her chin on her hand, her face thoughtful as if nothing had happened and then he looked back and forth between us.

“Did you go out? She said her aunt came.”
“My sister-in-law? She doesn’t even know where we live. How could she have come? I’ve been home all day.”
I was bewildered, unsure who to believe, and looked back and forth between mother and daughter.
Then, as if nothing had happened, they stepped out and left. Two months later, they moved away without a word.

And now, on days when the snow falls thickly, I find myself remembering that child’s tear-filled gray eyes—eyes that had grown up amidst the uncertainties of the adult world.

Thursday, January 23, 2025

기다리는 남자


“3시에 나갈까요.”

내가 모처럼 남편과 함께 가야 할 모임이 있어서 말했다.

“뭘 그렇게 일찍 나가. 일찍 가서 길바닥에서 기다리려고. 3시 30분에 나가자고.”

남편이 대꾸했다.

“또 시작이군. ‘알았어.’라고 대답하면 간단할 일을 항상 뒤틀어 일을 어렵게 만든다니까. 그럼, 각자 나가고 싶은 시간에 나가서 모임에서 만나요.”

나는 항상 부정적으로 뒤트는 남편의 대답을 듣느니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하다. 


초대받은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가자고 눈치를 준다. 모임에서 남편 옆에 있으면 빨리 가자고 쿡쿡 찌르며 재촉하기 때문에 나는 남편을 피해 다닌다. 

“아니 오자마자 가? 집에 그리도 가고 싶으면 먼저 가. 나는 더 놀다 갈 거야.” 

될 수 있으면 남편과 멀리 떨어져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남편은 내 주위를 뱅뱅 돌다 다가와서 

“이젠 그만 가지.”

“왜 먼저 가라는데 가지 않고.”

“답답해서 그래. 그러면 문밖에서 기다릴게. 천천히 이야기하다가 나와.”

“나는 오래 있다가 갈 거야. 왜 밖에서 기다린다는 거야. 기다리지 말아. 나 좀 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둬.”


친구들과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조용하다 싶어서 둘러봤다. 남편이 집에 갔는지 없다. 느긋해진 나는 마음 놓고 수다에 푹 빠졌다. 모임이 거의 끝나갈 즈음

“선배님 오랜만에 만났는데 헤어지기에 섭섭해요. 우리 카페 가서 더 이야기해요.”

“나야 좋지. 그렇게 하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의 큰 얼굴이 문밖에서 떡하니 버티고 나를 반긴다. 

“아이 깜짝이야. 아니 집에 가지 않고 왜 여기 서 있는 거야.”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마누라 내려오길 기다렸지.”

후배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무래도 내가 집에 가지 않으면 저 사람 계속 길바닥에서 서 있을 것 같아.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남편과 집 방향으로 걸었다. 좀 미안한 감이 들었다.

“고마워 기다려줘서.”

“밤늦게 마누라 혼자 집에 오다가 무슨 일 날까 봐 기다렸지.”

“길바닥에서 기다려 주지 말고 함께 가야 할 때, 내가 나갈 시간을 말하면 그냥 ‘알았어.’라고 말해주면 좋겠어.”

나는 남편의 부담스러운 애정 표현과 내가 말하는 것마다 부정적으로 뒤트는 일상으로 40년을 시달렸다. 한편으론 싱글의 자유로운 삶이 부럽다.

A waiting man

"Shall we leave at 3 o'clock?"

I said this because I had a gathering to attend with my husband.

"Why leave so early? Do you want to wait around on the street? Let's leave at 3:30," he replied.

"Here you go again. All you'd have to do is say, 'Okay,' but you always twist things and make everything more complicated. Fine, let's each leave whenever we want and just meet at the gathering," I said.

I feel comfortable to go alone rather than listen to his constant negativity.


When we arrived at the gathering where we were invited, even before I could start chatting with my long-time friends, he started giving me signals to leave. At social gatherings, he pokes me and urges me to leave early, which makes me try to avoid him.

"Why are you already wanting to leave as soon as we arrive? If you want to go home so badly, go ahead. I'm staying longer," I said.

I made an effort to stay far from him, avoiding eye contact. He hovered around me and eventually approached, saying,

"Isn't it time to leave now?"

"Why don't you just leave if you want to? I said I'd stay longer."

"It's frustrating. Fine, I'll wait outside. Take your time talking and come out when you're ready."

"I'm going to stay a long while. Why are you waiting outside? Don't wait for me. Just let me do things my way," I replied.


After chatting with my friends for a long time, I noticed that it had become quiet around me. My husband had disappeared. Thinking he had gone home, I felt at ease and fully immersed myself in the conversation.

As the gathering was winding down, someone said,

"Senior, it's been so long since we last met. It's too bad to part ways now. Let's go to a café and talk more."

"That sounds great. Let's do that," I replied.


As we opened the door to leave, my husband's large face was right there waiting for me.

"Oh my gosh, you scared me! Why are you still here? I thought you went home."

"I was just watching people pass by while waiting for you to come out," he said.

I apologized to my friend.

"I'm afraid if I don't go home, he'll just keep standing outside. Let's continue our conversation next time."


I walked in the direction of our house with my husband. I felt a little guilty.

"Thanks for waiting for me," I said.

"I was worried something might happen if you came home late at night by yourself, so I waited," he replied.

"Instead of waiting on the street like that, when I tell you the time I want to leave, it would be nice if you just said, 'Okay,'" I said.

For 40 years, I’ve endured his burdensome displays of affection and his habit of twisting everything I say. Sometimes, I envy the freedom of being single.

Thursday, January 9, 2025

싱글인 줄 알았는데


사람의 머릿속은 그 사람이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 속과 그 사람이 사는 집안 속과  같다고 한다. 

오래전, 겨울이 끝나가는 화창한 날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반가웠다. 중요한 서류를 룸메이트가 뒤질까 봐 몽땅 들고 다니는 그녀가 또 그 무거운 주홍색 백팩을 메고 나올까?’ 궁금했다. 맨해튼 다운타운 워싱턴 스퀘어에서 만났다. 나는 봄볕에 달구어진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멀리서 주홍색이 세월의 때가 묻어 갈색이 된 백팩을 메고 구부정하게 걸어오는 그녀를 금방 알아봤다. 그녀는 가방이 안전하고 편하도록 벤치에 기대놓고 자신은 의자 끝에 히프를 살짝 얹은 불편한 자세를 취하더니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백팩이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아요.”

“무게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남편과 이혼한 서류를 넣었더니.”

“결혼했었어요? 나는 싱글인 줄 알았는데.”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어린 나이에 한국에 파견된 미군과 결혼하고 조지아로 왔어요. 미국 하면 화려하고 좋은 줄만 알았지 그렇게 깡시골에 많은 식구와 일가친척이 모여 사는 줄은 몰랐어요. 남편은 술만 마시면 얼굴값 하는 화냥년이라며 저를 두들겨 패기 일수였어요. 그곳에서 버티다가는 죽겠구나 싶어 뉴욕으로 도망 왔지요. 보시다시피 제 얼굴이 조금 반반하지 않나요?”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드문드문 있긴 하지만, 흰 피부, 짙은 쌍꺼풀 눈, 적당히 솟아오른 코, 뚜렷한 인중 밑에 얇은 입술은 말할 때 떨리는 듯했다. 꾸미지 않고 뒤로 질끈 묶은 머리털은 거칠었다. 짊어진 커다란 가방에서 시선만 떼고 자세히 관찰했다며 예쁜 얼굴임을 알아봤을 것이다. 몸매 또한 옷만 제대로 걸치고 돌덩어리 같은 주홍색 백팩 없이 똑바로 섰더라면 팔다리가 길고 균형 잡힌 체형이다. 허스키 목소리는 쾌활하게 톤을 높였다가 금방 축 처지는 공허한 낮은 소리로 일관성 없이 수시로 변했다. 그녀의 기분 또한 각양각색으로 나타났다. 말을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는가 하면 불안한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뭔가 두려운 듯 두리번거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깜빡했다는 얼빠진 표정의 씁쓸한 미소로 허리를 펴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마 자신의 지난 삶을 뒤돌아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이혼을 해주지 않아 미루다가 그간 수없이 많은 서류가 오가면서 드디어 얼마 전에 서류 정리가 끝났어요.” 

이혼으로 그녀의 몸과 마음은 홀가분하고 가벼워진 듯 미래에 대한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녀의 등에 업혀 바래고 피곤해져 갈색조로 변해가는 백팩이 마치 생명체를 띄며 이제는 그만 그녀의 등에서 내려서 쉬고 싶다고 진지하고 묵직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듯했다.

I thought you were single.

It’s said that a person’s mind resembles the bag they carry daily and the inside of the living space.


A long time ago, on a sunny day near the end of winter, I received her call. I was delighted. I wondered if she would show up again carrying that heavy orange backpack, worried her roommate might rifle through her important documents. We met at Washington Square Park in Downtown Manhattan. I was sitting on a bench warmed by the spring sunlight, leaning back. From afar, I recognized her instantly—hunched over, carrying her now faded orange backpack, which had turned a brownish color with age. She approached, and when she reached the bench, she placed her bag against it for security. Sitting awkwardly on the edge of the seat, she glanced at me with an embarrassed look.


"Your backpack seems even bigger than the last time we met."

"It’s not any heavier, but now it holds my divorce papers."

"You were married? I thought you were single."

"I was desperate to survive, so I got married at a young age to an American soldier stationed in Korea and moved to Georgia. I thought America was glamorous and wonderful, but I didn’t know I’d end up in such a rural place, living among so many extended family members. 

Whenever my husband drank, he would beat me up, calling me a slut who only cares about my appearance. I thought I would die if I stayed there, so I ran away to New York. Don’t you think I have a somewhat pretty face?"


Her face had a few acne scars, but her fair skin, deep double-lidded eyes, moderately prominent nose, and thin lips below a well-defined philtrum gave her an attractive look. Her hair was unstyled and tied back roughly, with a coarse texture. If I had looked away from the large bag she carried and observed her closely, I would have noticed how pretty she was. Her figure, too, with long arms and legs and balanced proportions, would have stood out if she wore fitting clothes and stood upright without that heavy orange backpack weighing her down. Her husky voice shifted inconsistently, rising cheerfully before falling into hollow, low tones. Her moods were as varied as her voice. She would pause mid-conversation, watch passersby intently, and curl up uneasily, glancing around as if frightened. When our eyes met, she would straighten her posture, flash a faintly bitter smile as if she had just remembered something, and continue talking. Reflecting on her past life was clearly not an easy task.


"My husband kept delaying the divorce, and countless documents went back and forth, but finally, everything was settled recently."


The divorce seemed to have lightened her body and mind, filling her with hope for the future. The faded, tired-looking backpack on her back seemed almost alive, as if silently pleading to be set down, tired of carrying the weight of her burd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