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8, 2024

세계 속 K드라마 위상


당신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 마치 기분 좋은 무감각으로 빠져들면서 긴장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사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많이 걱정했어요. 당신이 뉴욕을 떠나 중국으로 간 후 전혀 연락이 없었잖아요. 중국에서 인터넷이 끊겼을 거라고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인터넷이 전기처럼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거예요. 인터넷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없으면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려야 하죠.

오래전 미국에 온 후로, 나는 서울에 살다가 2014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 일주일에 한두 번 편지를 쓰곤 했어요. 만약 아직도 살아계신다면, 여전히 편지를 쓰고 있을까요? 아버지는 이메일을 사용할 줄 모르셨어요. 나이가 들면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어린 당신을 생각하면 내가 처음 뉴욕에 왔을 때가 떠올라요. 한때 나도 지금의 당신처럼 젊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물론, 나의 뉴욕 학창 시절(1981-1984)은 당신의 뉴욕 학창 시절(2011-2014)과는 매우 달랐죠. 내가 유학 올 때만 해도 인터넷이 없었으니까요. 미국에 있는 어느 대학으로 갈까? 고민할 때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1974년)가 떠올랐어요. 그 영화의 배경이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거든요. 뉴욕에 가면 그렇게 멋진 곳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어요. 부푼 풍선처럼 희망을 품고 롱아일랜드 가든 시티에 있는 아델파이 대학에 입학했어요.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멋진 저택은 어디에 있는지? 대신 아프리카에서 온 룸메이트와 함께 붉은 벽돌 기숙사에서 어두운 날들을 보냈지요. 

나는 당신의 가냘픈 몸매와 오목조목한 작은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요즈음 한국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이 아닌가 착각했어요. 예쁘고 어린 당신과 내가 전시회 파트너로 공동 작업할 수 있을까? 무척 고민하는 나에게 당신은 반기며 말했어요.

“안녕하세요. 언니, 함께 전시하게 되어 반가워요.”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말을 배웠다니!. 놀라웠어요. 

“중전마마, 상감마마, 대왕대비마마도 알아요. 언니”

어머머! 나는 놀라고 당신은 나에게 ‘언니, 언니.’ 하면서 서로가 맘을 열었지요. 그리고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되었어요. 우리는 전시회 공동 작업에는 열중하지 않고 한국 드라마의 영향력과 위상에 열광하며 드라마 이야기만 했지요.

“내년 3월 전시회에서 언니를 만날 때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한국말을 더 잘할 거예요.”

라는 당신의 말에 나는 감격했습니다.

The Global Influence of K-Dramas

When I received your email, it felt as though I was sinking into a pleasant numbness, and all my tension melted away. I wondered what had happened to you. I was so worried. After you left New York and went to China, I didn’t hear from you at all. Why didn’t it occur to me that the internet might be down in China? Perhaps it’s because we believe the internet is always with us, like electricity. While it offers us convenience, its absence leaves us anxiously waiting for news.

Back when I first came to America, I used to write letters to my father, who lived in Seoul, once or twice a week. He passed away in 2014. If he were still alive, would I still be writing letters? My father never learned how to use email. As we grow older, adapting to a world that changes so rapidly becomes increasingly difficult.
Thinking of you as a young person reminds me of when I first came to New York. There was a time when I, too, was young like you. Of course, my student days in New York (1981–1984) were very different from yours (2011–2014). When I first came to study abroad, there was no internet. When deciding which American university to attend, I thought of The Great Gatsby (1974), a film starring Robert Redford. Its setting is in Long Island, New York. I imagined that moving to New York would mean living in such a glamorous place. Filled with hope, I enrolled at Adelphi University in Garden City, Long Island. Where were the grand mansions I had seen in the film? Instead, I spent gloomy days in a red-brick dormitory with my roommate, who had come from Africa.
When I first saw your slender figure and delicate, charming face, I mistook you for one of the popular celebrities in Korea these days. Could someone as young and beautiful as you collaborate with me on an exhibition project? As I hesitated, you greeted me warmly.
“Hello, unnie. It’s nice to work on this exhibition with you.”
I was amazed to hear that you had learned Korean by watching Korean dramas.
“I even know Queen Mother, Your Majesty, and Grand Dowager Queen, unnie.”
Oh my goodness! I was astonished, and you kept calling me “unnie, unnie,” which opened both our hearts. Despite our age difference, we became friends. Instead of focusing on the exhibition project, we became absorbed in our conversations about the influence and status of Korean dramas.
“When I meet you at next March’s exhibition, I’ll have watched many more Korean dramas and improved my Korean.”
Hearing you say this moved me deeply.

Thursday, November 14, 2024

다 그런 거지 뭐


나는 트레이드 조와 이케아를 좋아한다.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이케아는 디자인이 좋아서 트레이드 조는 친절하고 다양한 작은 양의 먹거리가 많아서다. 

밀폐된 공간에 머무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이케아에 가면 빨리 일보고, 나가자고 재촉하는 신호를 남발하기 때문에 혼자 가는 것을 선호한다. 여유롭게 신상품 디자인도 들여다보고 창밖 풍경을 보며 느긋하게 차도 마실 수 있다. 주말에 맨해튼 최남단에 있는 피어 (Pier) 11에서 11시 무료 첫배를 타고 갔다가 2시 20분 배를 타고 돌아온다. 


지난번 갔을 때는 처음으로 3시 50분 배를 타고 집에 왔다. 남편 도시락 병을 사서 2시 20분 배를 놓치지 않으려고 재촉하다가 병이 깨지는 바람에 눈앞에서 배를 놓쳤다. 항상 서두를 때 꼬인다. 놓친 배 뒷전을 아쉬운 듯 보다가 흘러가는 강물로 시선을 옮겼다. 사이좋게 서로 몸을 비비며 졸졸 이야기하듯 흐르는 물을 보자 배를 놓친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마음이 편해졌다.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지하철 안에서 곧 떠날 써브웨이를 타려고 부지런히 뛰던 뚱뚱한 흑인 아줌마가 계단에서 다리를 헛디뎌 떨어졌다. 심하게 다쳤는지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녀 바로 뒤에서 계단을 내려가다 본 목격자로 아줌마를 위로하며 함께 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서너 번 일어서려고 시도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경찰이 와서 확인하고 앰뷸런스를 불렀다.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어릴 적 학교 앞 횡단보도 포스터가 생각났다. 심한 부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따금 오래된 치즈 냄새나는 지하철 안에서 서둘러야 하는 맨해튼 생활을 벗어나 멀리 가고 싶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봐도 뉴욕이 최고지! 하며 돌아온다. 한동안은 괜찮다가도 도지면 또 떠났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한다. 


과연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경계를 만들어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단지 내가 그렇게 판단할 뿐이다. 누군가가 말한 ‘아무것도 절대적으로 희다거나 검다고 하는 것은 없다. 즉 희다고 하는 것은 검은색이 숨겨진 것을 의미하고 또한 검다고 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나 흰 것이 드러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왜 난 흰색과 검은색을 굳이 밝히려고 방황하는지 모르겠다.

Well, it's all like that

I like Trader Joe’s and IKEA. Even though prices have gone up, I like IKEA’s designs, and Trader Joe’s has friendly service and a good selection of small-portion foods.


My husband doesn’t like staying in enclosed spaces, so when we go to IKEA, he rushes through things and keeps signaling for me to hurry up and leave. Because of that, I prefer going alone, so I can take my time looking at new designs and enjoy a leisurely cup of tea On weekends, I take the first free ferry from Pier 11 at the southern tip of Manhattan at 11 a.m., and return on the 2:20 p.m. ferry.


The last time I went, though, I took the 3:50 p.m. ferry home for the first time. I had been buying a jar and trying to make the 2:20 ferry, but in the rush, the jar broke, and I missed the boat right in front of me. It always goes wrong when I’m rushing. I watched the departing boat with regret, but as my gaze moved to the flowing river, I watched the water slowly passing by, rubbing together like close friends telling each other stories. Missing the boat didn’t feel so bad; my mind felt at ease. It reminded me of something that happened a few days ago.


On the subway, a heavyset Black woman was rushing to catch a departing train and missed a step on the stairs, falling hard. She couldn’t get up, so I, coming down the stairs right behind her, comforted her and stayed with her. She tried two or three times to get up, holding my hand, but she couldn’t move at all. The police came, checked her condition, and called an ambulance. I thought of a poster I remembered from childhood, outside my school’s crosswalk, saying, “If you try to be five minutes early, you might end up 50 years.” I hope she wasn’t seriously hurt.


Sometimes I just want to escape the rush of life in Manhattan, from the crowded subway with that smell of old cheese. Yet even after I wander here and there, I keep coming back, thinking, “NYC really is the best!” For a while, I feel fine, but when the urge comes up again, I’ll go away and come back again, and the cycle repeats.


Can we really draw firm boundaries between good and bad, right and wrong? I’m only judging it all from my own perspective. Someone once said, “Nothing is ever purely white or black. Saying something is white means there’s black hidden in it, and saying something is black means there’s something very white revealed within it.” I don’t know why I keep wandering around, trying to clarify the whites and blacks.

Friday, November 1, 2024

연인


취향에 따라 사람들은 여행한다. 쇼핑하기 위해 아니면 먹거리를 찾아서. 내 경우엔 새로운 세상 속 삶을 찾아서다. 또한 내가 읽은 책과 본 영화의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1992 년에 개봉된 ‘연인 (The lover)’ 영화를 보고 책도 읽었다. 나룻배 갑판 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서 있던 가냘픈 프랑스 소녀의 중절모를 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본 이후 나도 어딜 가나 모자를 늘 쓰고 다니며 영화의 배경인 메콩강에 가고 싶었다. 


첫날 본 메콩강은 메주콩 색에 흰색과 핑크색을 조금씩 섞은 색을 띠었다. 

“유유히 체념한 듯 흐르는 강물 색이 신비하긴 하군.”

내가 지껄이자, 옆에 있던 친구가 

”기가 막혀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니까. 저 깊은 물 속을 상상해 봤어? 사방팔방에서 흘러 들어간 똥물이 신비하다니! 저 물에서 잡은 생선을 먹을 수 있겠어? 신비는! 자기는 참 엉뚱해.“

시시각각 변하는 강물색 위로 그물을 치는 어부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현실에 직면하고는 눈을 돌렸다. 물에 잠길 듯 말 듯 떠 있는 덤불숲과 집들은 폭우가 지난 후에 흙탕물에 쓸려 떠내려가는 듯했다


황톳빛 메콩강의 얕은 수심 탓으로 크루즈를 강 한가운데 정박하고 작은 목선을 타고 동네 어귀의 허름한 선착장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규모가 큰 반 노천 시장통 입구에서 비켜있는 웅장한 옛 저택으로 들어섰다. 흰 대리석 아치를 두른 저택은 프랑스와 중국 건축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다. 입구에 조각한 울퉁불퉁한 나뭇잎 위에 금분을 바른 거창한 현판 ‘황금순’이라는 한자로 쓰인 문패가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에는 저택 주인의 가족사진들이 걸려있다. 마주 보는 벽에는 영화 ‘연인’ 속 배우들의 빛바랜 사진이 걸려 있다. 


15세 프랑스 소녀와 32살의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유한 중국계 남성과 불같은 사랑을 다룬 섬세하고 노골적인 베드신으로 흥행한 영화의 배경인 저택이다. 내부로 들어서니 널찍한 자게 상이 놓여 있다. 남자 주인공의 부친이 비스듬히 누워 아편을 피우던 자리다. 뿌연 아편 연기 속에서 아들이 프랑스 소녀와의 결혼을 극구 말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들에 관해서는 그의 이름처럼 부드러운 비단인 ‘황금순’이 아니라 거친 마대와도 같은 성질로 “차라리 죽어버려라,”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압력에 굴복하고 그들의 사랑은 비틀거리다가 소녀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끝난다. 영화를 상상하며 흥미롭게 둘러보는데 마치 황 영감의 지시를 받고 내어놓은 듯 차를 가져왔다. 차를 마시자, 차의 향기와 고색창연한 실내 분위기에 빠져서 두 남녀가 몰래 정사를 나누던 시장통에 있던 짙은 회색 문의 아지트는 어디일까? 궁금했다. 


훗날 소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가 되었다. 마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다. 영화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도 사랑하고,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라.”고 전화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L’Amant

Everyone has different reasons for traveling: some travel for shopping, others for food. In my case, I travel to find new worlds, new ways of life. I could also say I travel to feel what I read in books and see in movies.


I watched the movie L’Amant (The Lover), which was released in 1992, and also read the book. The image of the thin French girl leaning her elbows on the rail of a ferry, wearing a fedora, left a strong impression on me. Since watching the film, I, too, have always worn a hat wherever I go and have wanted to visit the Mekong River, where the movie takes place.


The Mekong River, which I saw for the first time, was a color like meju beans mixed with a touch of white and pink.

"The river flows with a mysterious color, as if resigned," 

I remarked. My friend next to me retorted,

“Unbelievable! Have you lost all sense? Can you even imagine the filth beneath that water? The waste from all around flows into it, and you call it mysterious! Would you eat fish from that river? Really, you have such a strange mind.”


Seeing fishermen casting their nets into the constantly changing water color felt incredibly romantic. But faced with the reality up close, I turned my eyes away. The clumps of bushes and houses, nearly submerged, seemed as if they would be swept away by muddy water after a heavy rain.


Due to the shallow waters of the clay-colored Mekong River,  our cruise anchored in the middle of the river, and we arrived at a shabby village dock on a small wooden boat. I entered a grand old mansion standing apart from the noisy, large-scale, semi-open-air market. Framed by white marble arches, the mansion is a unique fusion of French and Chinese architecture. Above the entrance was a large gilded signboard inscribed with the Chinese characters Hwang geum soon(Soft Silk). Inside, one wall was decorated with family portraits of the mansion’s owner, and on the opposite hung faded photographs of the actors from L’Amant.


This mansion is the setting of the movie, which depicted a fiery love affair between a 15-year-old French girl and a wealthy 32-year-old Chinese man who had just returned from studying in Paris. Entering the house, I saw a large mother-of-pearl table, the male protagonist’s father used to lie down and smoke opium. In the smoky opium smoke, I remember the scene where his son strongly discouraged him from marrying the French girl. Under his father’s pressure, their love faltered, eventually ending when she left for France. As I toured the mansion with these scenes in my mind, a cup of tea was served, as if by the direction of old Hwang himself. As I drank, the scent of the tea and the timeless atmosphere made me wonder where their secret hideout was, behind that gray door in the market, where the two lovers would meet in secret.


In later, the girl became one of France’s most celebrated female authors, Marguerite Duras. The film is based on her autobiographical novel. The last scene, in which the man, his voice trembling, calls to say, “I still love you, will always love you, and will never stop loving you until I die,” is unforg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