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20, 2025

작은 것에 대한 예찬론


나는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작은 나를 싫어하겠지만, 키 작은 우리 친정아버지도 나와 같았다. 친정 언니가 결혼 한다고 데려온 남자는 키도 컸지만 덩치가 너무 컸다. 그를 올려다보며 인상 쓰던 아버지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작은 키로 험난한 세상을 단단히 버티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키 큰 남자의 시선이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건 아닐까? 사람 됨됨이도 보지 않고 무조건 키 큰 사람이 싫어지는 심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크면 내가 숨 쉴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나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자리를 뜨고 싶다.


나는 길가에 핀 크고 화려한 꽃보다는 앙증맞은 작고 소박한 꽃들을 좋아한다. 화려한 꽃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핀 작은 꽃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애처롭다. 작은 것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애착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큰 것은 그냥 스쳐도 작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멈춰서서 자세히 살피며 말을 걸고 싶은 심리는 아마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난 굵은 선보다 가는 선을 좋아한다. 그래서였을까? 판화 중에서 가는 선을 기본 기법으로 화면을 만들어 가는 동판화를 전공했다. 나의 작은 손으로 가는 선이 그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작은 캔버스 위에 그릴 때 더 집중하고 파고들어 내 마음을 전달하면 애정 어린 작업이 나온다. 작고 가는 선으로 만들어진 내 작품은 거창한 장소에 걸리는 것보다는 화장실 가는 통로라던가 복도 끝 벽에 걸리면 작품은 제자리를 찾은 듯 차분해진다. 볼일 보러 가면서 본 듯 만 듯 스치거나 긴 좁은 복도를 지날 때 누군가가 슬쩍 봐주면 제자리를 조용히 지키던 그림은 밝은 표정으로 반긴다. 


내 이름 영어는 전부 소문자 sooim lee 다. 얼마 전 갤러리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이름을 왜 소문자로만 쓰느냐? 는 질문을 받았다. 그전에도 서너 번 내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대문자보다는 소문자를 선호해서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 않는 작은 모습인 나에 대한 합리화인 것 같다.

Ode to Small Things

I do not like tall and large-built men. Of course, they may dislike someone as small as me, but my father, who was also short, felt the same way. I clearly remember the frown on his face when my older sister brought home the man she was going to marry—a man not only tall but also overwhelmingly large. Perhaps the gaze of that towering man looking down at him pricked my father’s pride, a man who had firmly endured the hardships of life with his small frame. Maybe I inherited this instinctive dislike of tall people from him, a tendency to dismiss them without even considering their character. When someone is too big, I feel as if my breathing space is being taken away. It gives me an oppressive sense of being crushed, making me want to leave the room.


I prefer small, modest flowers to large, extravagant ones by the roadside. The dazzling blooms easily capture people's attention, while the tiny, unassuming ones seem to wait patiently for someone to notice them, evoking a sense of melancholy. When I see something small, my heart swells with affection, drawing me closer. I can pass by large things without a second glance, but small ones make me stop, examine them closely, and even feel the urge to speak to them—perhaps because I relate to them.


I prefer fine lines over bold strokes. Maybe that’s why I specialized in etching, a printmaking technique that uses delicate lines to build an image. When I carve fine lines with my small hands, I feel a sense of exhilaration. Working on a small canvas makes me more focused, allowing me to pour my heart into my work. My creations, formed through fine, intricate lines, do not belong in grand exhibition halls. Instead, they find their rightful place in quiet corners—perhaps along a hallway leading to a restroom or at the far end of a corridor. If someone notices my artwork in passing, just for a brief moment, the piece, which had been silently keeping its place, will greet them with a quiet smile.


My English name is written entirely in lowercase: sooim lee. A woman I met at a gallery recently asked, "Why do you write your name in lowercase letters?" Others, too, have questioned whether it was a mistake. But I simply prefer lowercase letters. Perhaps it is my way of justifying my existence—small, subtle, and barely noticeable, just like me.

Thursday, March 6, 2025

가자미식해와 낫또


“네가 이렇게 음식 솜씨가 없으니, 아비가 성인병이 없는 거야.”

나만큼이나 음식 솜씨 없는 시어머니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는 맛없다는 표현을 돌려서 말하셨다. 시어머니 말처럼 내가 만든 음식은 내 남편 이외는 아무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다. 물론 설탕도 참기름도 조미료도 아예 집에 없다. 시어머니는 LA에서 오실 때마다 혼다시를 가지고 오셔서 

“맛이 통 나지 않으니, 이거라도 음식에 조금씩 넣어라.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만큼 괴로워한다. 남편은 아무리 음식 맛을 불평해도 내 실력이 나아지지 않자 포기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같은 소리를 한다. 

“음식 솜씨 좋은 부인과 사는 남자들이 나이 들어서 성인병 때문에 약들을 한 움큼씩 먹는데, 나는 마누라의 희한한 요리 솜씨 덕에 건강을 유지하네. 복도 가지가지야.”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되잖아. 적게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산데요.”

음식도 못하는 주제에 나는 잘났다고 빼놓지 않고 토를 단다.


나도 잘하는 음식이 있다. 음식 솜씨 없는 함경도 시어머니가 그나마 잘하는 것이 가자미식해다. 좋아하는 음식이라 옆에서 따라 하다가 전수받았다. 나는 시어머니처럼 거창하게 식해를 만들지 않는다. 가자미를 사다가 지져 먹고 구워 먹다가 남은 가자미를 통째로 소금을 듬뿍 붓고 냉장고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살이 물러진 것 같으면 잘라서 소금 다시 붓고 또 냉장고 구석에 밀어 넣는다. 그러다 가자미 삭힌 것을 잊어버려 한 달이 지난 후 허겁지겁 메조 밥을 만들어 고춧가루와 다진 생강과 마늘을 넣어 가자미와 섞어 놓고 무채를 굵직하게 썰어 버무린다. 맛없는 음식만 먹던 남편과 나는 그나마 맛있다고 잘도 먹는다. 저희끼리 얽히고설켜 삭혀져 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나의 엉뚱한 아이디어다. 내가 만든 맛없는 김치 종류들은 냉장고 구석에서 세월아 네월아 신세가 된다.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면 김치찌개용으로 변신한다.


내가 또 잘하는 것이 낫또다. 겨울만 오면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 놓고 된장국에 한 수저 듬뿍 넣어 끓인다. 남편은 콩 씹는 맛이 일품이라며 무척 좋아한다. 콩을 하루 동안 불린다. 불린 콩을 압력밥솥에 밥처럼 한다. 물기가 없는 상태의 뜨거운 콩에 볏짚 같은 재료가 없으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낫또 두 팩을 넣어 섞는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방 스팀 위에 낡은 담요 서너 장을 덮고 하루 이상 처박아 두면 진이 찐득찐득 올라온다. 남편은 가자미식해와 낫또를 잘하면 요리 솜씨가 대단한 거라며 나를 띄운다. 속셈은 낫또와 식해만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수시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제 낫또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식혜 만들 때가 지난 것 같은데?” 

남편은 내 표정을 살피면서 은근히 만들라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야만 하는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김치 쪼가리처럼 찌그러져 없는척한다.

Gajami-sikhae and Natto

"Since you're so bad at cooking, your husband doesn’t have any adult diseases."

My mother-in-law, who is just as bad at cooking as I am, tasted the food I made and indirectly expressed. Just as she said, no one but my husband can eat the food I make. Of course, I don’t even keep sugar, sesame oil, or seasonings in my kitchen. Every time my mother-in-law visits from LA, she brings Hondashi with her.

"Your food has no flavor at all, so at least add a little of this—just while I’m in New York."


For me, stepping into the kitchen feels like a cow being dragged to a slaughterhouse. My husband has long given up complaining about my cooking, realizing my skills will never improve. Now, he says the same thing as my mother-in-law.

"Men who marry good cooks' wives end up taking handfuls of pills for adult diseases when they get older, but thanks to your strange cooking skills, I stay healthy. Luck comes in all forms."

"You only need two meals a day anyway. They say eating less helps you live longer and healthier."

Even though I’m terrible at cooking, I never fail to argue back as if I know better.


But there are a couple of dishes I do make well. My mother-in-law, who is from Hamgyong Province and also lacks cooking skills, at least knows how to make gajami-sikhae. Since I like the dish, I learned it by watching her. However, I don’t go through the elaborate process she does. I simply buy flatfish, grill or fry it, and when there’s any left over, I cover it generously with salt and shove it into the back of the fridge. Once the flesh starts to soften, I cut it up, add more salt, and push it back into the fridge. Sometimes, I forget about it entirely, and after a month, I hurriedly make mejo rice, mix it with red pepper powder, minced ginger, and garlic, and then cut the radish into thick pieces and mix it. My husband and I, who are used to eating my tasteless food, actually enjoy this dish. My logic is that, since everything is left to ferment together, the flavors naturally deepen. The tasteless kimchi I make, on the other hand, get neglected in the fridge for ages. When they start smelling too sour, they get repurposed into kimchi stew.


Another thing I do well is making natto. Every winter, I make and store it in the freezer, adding a generous spoonful to miso soup. My husband loves the chewy texture of the soybeans. First, I soak the soybeans for a day. Then, I cook them in a pressure cooker like rice. While the beans are still hot and without any excess moisture, I mix in two packs of store-bought natto, since I don’t have straw to use as a starter culture. I cover the container with several old blankets and leave it on the steam radiator in a draft-free room for over a day until the sticky strings appear.


My husband insists that being able to make gajami-sikhae and natto is proof of great cooking skills and constantly praises me. His real motive, of course, is to make sure I keep making them.

"Isn’t it about time to make natto? I think it’s been a while since you made sikhae."

Watching my expression carefully, he subtly hints that I should make them again. But since I only cook when I feel like it, I shrink back like a neglected piece of kimchi hiding in the fridge, pretending I don’t exist.

Thursday, February 20, 2025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쩜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산책해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갑자기 눈이 쏟아져 쌓인 날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도어맨이 말했다.

“아침에 산책하지 않으면 종일 몸이 찌뿌둥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요.”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산책한다. 눈 오는 날은 세상 소음이 눈에 덮어 고요하다. 눈 위를 걷는 내 발자국 뽀드득 소리만 들린다. 비 오는 날은 비에 젖은 숲 냄새 맡으며 빗물에 씻겨 내려간 깨끗한 인적 없는 길을 걷는 맛이 상쾌하다. 흐린 날엔 사색에 잠긴 철학자라도 되는 양 걷는다. 화창한 날, 햇볕 받은 몸은 늘어져 바람에 실려 가듯 걷는다.


일 년 중 며칠 없는 눈 오는 날은 산책 후 야외 자쿠지 사우나 탕에 들어가 푹 잠기고 싶다. 마침, 친구가 눈이 꾸무럭거리며 오려고 발버둥 치던 날, 찜질방에 가자고 했다. 40년 전 친구가 미국에 오려고 준비하던 중 이태원에 가서 쇼핑하다가 나의 친정아버지를 만났다. 내 아버지는 무척 상냥한 사람이다.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예쁜 여자에게는 더욱 친절하시다. 두 사람이 어떻게 죽이 맞았는지 미국에 가면 우리 딸에게 연락해 보라고 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도 친정아버지 닮아 상냥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싹싹하다. 한자리 떡 차지하고 앉아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아버지가 소개해 준 친구는 어딜 가나 모두와 친해질 만큼 사교적이다. 

“나 몸이 찌뿌둥해. 찜질방 가자?”

찜질방 갈 기회가 없는 나는 눈 오는 날의 사우나 탕을 상상하며 두말하지 않고 친구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찜질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 잘못 왔구나.’ 했다. 시설이 낙후되어 깨끗하고 산뜻한 맛이 없다. 뭔가 구질구질하달까? 이왕 왔으니 어쩌겠는가. 지저분한 곳은 시선을 피하고 대충 샤워하고 온돌방에 들어가 누웠다. 등을 지졌다. 몸이 가뿐해졌다. 배를 채우고 다시 소금방 무슨 방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방들을 친구 따라 돌아다녔지만, 온돌방이 제일 좋았다. 


오래전 한국 여행길에, 사찰에 머문 적이 있다. 뜨끈뜨끈 끓는 온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 오래 푹 자다 일어난 듯 겨울 여정의 피로가 다 풀려 몸이 홀가분했다. 매서운 산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눈길 위에 새겨진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된장국 냄새가 피어나는 사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심심한 간으로 고유한 맛을 그대로 살린 된장국에 감자 졸임과 고추나물의 간소한 상차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또 그곳으로 가고 싶다.

Rain or shine

"How do you go for a walk every single day? Even in this cold weather?"

It was a day when snow had suddenly piled up. As I returned from my walk and opened the door, the doorman spoke to me.

"If I don’t take my morning walk, I feel sluggish and unpleasant all day."


Rain or snow, I take a walk every day. On snowy days, the world’s noise is muffled under the snow, leaving only the crisp sound of my footsteps. On rainy days, I enjoy the fresh scent of the wet forest and the clean paths washed by the rain. On cloudy days, I walk as if I were a philosopher lost in thought. On sunny days, I stroll as if my body, soaking in the sun, is floating on the breeze.


On the rare snowy days of the year, I long to soak in an outdoor jacuzzi after my walk. One day, when the snow seemed hesitant, as if struggling to fall, a friend suggested we go to a jjimjilbang. 40 years ago, when my friend was preparing to come to the US, she went shopping in Itaewon and met my father. My father was a very kind man. Like most men, he was especially friendly to pretty women. Somehow, they got along well, and he even gave her my US phone number, and that’s how we became friends.


Like my father, I am friendly, but only to those I like. If someone sits in one spot with a stiff expression, I don’t even bother talking to them. The friend my father introduced me to is so sociable that she becomes friends with everyone no matter where she goes.

"I feel sluggish. Let’s go to the jjimjilbang."

Since I rarely get the chance to go, I imagined soaking in a steaming sauna on a snowy day and followed her without hesitation.


However, the moment I stepped into the jjimjilbang, I realized I had made a mistake. The facilities were outdated, lacking the cleanliness and freshness I had hoped for. It felt somewhat grimy. But since I was already there, I decided to make the best of it. Avoiding the unclean areas, I took a quick shower and lay down in the ondol room, warming my back. My body felt lighter. After eating, we wandered through various rooms—the salt room, and others I can’t even remember—but the ondol room was my favorite.

Years ago, while traveling in Korea, I once stayed at a temple. I briefly lay down on the hot ondol floor, and when I woke up, I felt as if I had slept deeply. The exhaustion from my winter journey had melted away, leaving my body refreshed. Bracing against the biting mountain wind, I followed footprints in the snow into the temple’s dining hall, where the aroma of doenjang soup lingered. The simple meal of mild, yet deeply flavorful doenjang soup, braised potatoes, and lightly seasoned chili greens was unbelievably delicious. I long to return to that place again.

Thursday, February 6, 2025

소피아 딸


오래전 일입니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무언가를 보는 순간, 희미함을 뚫고 며칠 전 일처럼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 잡는 기억 말입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핍홀로 내다봤습니다. 소피아 딸 지니가 서 있었습니다.  

“왠일이니?” “아줌마 집에 들어가도 돼요?”

“엄마가 찾지 않을까?” “엄마는 아침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갔어요.”

“어린 너를 두고 어딜 가? 아빠는?” “어제 고모와 함께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았어요. 고모가 나를 데리러 왔나 봐요.” 


세상이 온통 눈으로 수북이 쌓인 어느 날,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이국적인 여자가 내가 사는 건물 안을 기웃거렸습니다. 불안과 초조로 방황하는 애처로운 그녀의 눈빛이 나와 마주쳤습니다. 사시나무 떨듯 근심으로 가득 찬 시선은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눈 덮인 시베리아를 헤매는 주인공 라라를 연상시켰습니다. 


“한국에 파견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 퀸스에 살았어요. 신문사에서 일하던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4년 전에 시집이 있는 오하이오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시누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을 다녔지요. 제가 싫다는 데도 부득부득 시누 부부가 아이를 자꾸 입양하겠다는 거예요. 아이를 뺏길 것 같아 겁이 났어요. 마침, 온라인으로 아파트 렌트한다는 광고를 보고 야밤에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도망치다시피 왔어요.”

이사 오자마자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네 고모가 너를 예뻐했다며.”

“아니요. 때리고 야단쳤어요. 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저는 아줌마가 좋아요.” 

한숨 쉬며 말하는 아이의 큰 회색 눈이 물기로 반짝였습니다.

“아이고, 불쌍한 것.” 

나도 갑자기 눈가가 젖고 목멘 소리로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다섯 살인 아이는 백인 아빠를 닮아 금발 아래 회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른 흉내를 내는 제스쳐와 말씨로 쉬지 않고 떠들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 났습니다. 핍홀로 내다보니 아이 엄마 소피아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 지니를 보지 못했나요?” “우리 집에 있는데요.” 

“너 여기서 뭐 하니? 얼마나 찾은 줄 알아. 말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문 열고 나가면 어떻게.”

아이는 어른처럼 꼰 다리 위에 손으로 턱을 바치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밖에 나갔다 오셨나요? 고모가 오셨다면서요?” 

“고모요? 우리가 어디 사는 줄도 모르는데 고모가 어떻게 와요? 저는 온종일 집에 있었어요.”

나는 누구 말이 진실인지 헷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녀를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훌쩍 이사 갔습니다. 어른들의 불안한 틈바구니에서 자란 아이의 눈물 젖은 회색 눈동자가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떠오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