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 2024

연인


취향에 따라 사람들은 여행한다. 쇼핑하기 위해 아니면 먹거리를 찾아서. 내 경우엔 새로운 세상 속 삶을 찾아서다. 또한 내가 읽은 책과 본 영화의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1992 년에 개봉된 ‘연인 (The lover)’ 영화를 보고 책도 읽었다. 나룻배 갑판 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서 있던 가냘픈 프랑스 소녀의 중절모를 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본 이후 나도 어딜 가나 모자를 늘 쓰고 다니며 영화의 배경인 메콩강에 가고 싶었다. 


첫날 본 메콩강은 메주콩 색에 흰색과 핑크색을 조금씩 섞은 색을 띠었다. 

“유유히 체념한 듯 흐르는 강물 색이 신비하긴 하군.”

내가 지껄이자, 옆에 있던 친구가 

”기가 막혀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니까. 저 깊은 물 속을 상상해 봤어? 사방팔방에서 흘러 들어간 똥물이 신비하다니! 저 물에서 잡은 생선을 먹을 수 있겠어? 신비는! 자기는 참 엉뚱해.“

시시각각 변하는 강물색 위로 그물을 치는 어부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현실에 직면하고는 눈을 돌렸다. 물에 잠길 듯 말 듯 떠 있는 덤불숲과 집들은 폭우가 지난 후에 흙탕물에 쓸려 떠내려가는 듯했다


황톳빛 메콩강의 얕은 수심 탓으로 크루즈를 강 한가운데 정박하고 작은 목선을 타고 동네 어귀의 허름한 선착장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규모가 큰 반 노천 시장통 입구에서 비켜있는 웅장한 옛 저택으로 들어섰다. 흰 대리석 아치를 두른 저택은 프랑스와 중국 건축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다. 입구에 조각한 울퉁불퉁한 나뭇잎 위에 금분을 바른 거창한 현판 ‘황금순’이라는 한자로 쓰인 문패가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에는 저택 주인의 가족사진들이 걸려있다. 마주 보는 벽에는 영화 ‘연인’ 속 배우들의 빛바랜 사진이 걸려 있다. 


15세 프랑스 소녀와 32살의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유한 중국계 남성과 불같은 사랑을 다룬 섬세하고 노골적인 베드신으로 흥행한 영화의 배경인 저택이다. 내부로 들어서니 널찍한 자게 상이 놓여 있다. 남자 주인공의 부친이 비스듬히 누워 아편을 피우던 자리다. 뿌연 아편 연기 속에서 아들이 프랑스 소녀와의 결혼을 극구 말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들에 관해서는 그의 이름처럼 부드러운 비단인 ‘황금순’이 아니라 거친 마대와도 같은 성질로 “차라리 죽어버려라,”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압력에 굴복하고 그들의 사랑은 비틀거리다가 소녀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끝난다. 영화를 상상하며 흥미롭게 둘러보는데 마치 황 영감의 지시를 받고 내어놓은 듯 차를 가져왔다. 차를 마시자, 차의 향기와 고색창연한 실내 분위기에 빠져서 두 남녀가 몰래 정사를 나누던 시장통에 있던 짙은 회색 문의 아지트는 어디일까? 궁금했다. 


훗날 소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가 되었다. 마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다. 영화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도 사랑하고,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라.”고 전화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L’Amant

Everyone has different reasons for traveling: some travel for shopping, others for food. In my case, I travel to find new worlds, new ways of life. I could also say I travel to feel what I read in books and see in movies.


I watched the movie L’Amant (The Lover), which was released in 1992, and also read the book. The image of the thin French girl leaning her elbows on the rail of a ferry, wearing a fedora, left a strong impression on me. Since watching the film, I, too, have always worn a hat wherever I go and have wanted to visit the Mekong River, where the movie takes place.


The Mekong River, which I saw for the first time, was a color like meju beans mixed with a touch of white and pink.

"The river flows with a mysterious color, as if resigned," 

I remarked. My friend next to me retorted,

“Unbelievable! Have you lost all sense? Can you even imagine the filth beneath that water? The waste from all around flows into it, and you call it mysterious! Would you eat fish from that river? Really, you have such a strange mind.”


Seeing fishermen casting their nets into the constantly changing water color felt incredibly romantic. But faced with the reality up close, I turned my eyes away. The clumps of bushes and houses, nearly submerged, seemed as if they would be swept away by muddy water after a heavy rain.


Due to the shallow waters of the clay-colored Mekong River,  our cruise anchored in the middle of the river, and we arrived at a shabby village dock on a small wooden boat. I entered a grand old mansion standing apart from the noisy, large-scale, semi-open-air market. Framed by white marble arches, the mansion is a unique fusion of French and Chinese architecture. Above the entrance was a large gilded signboard inscribed with the Chinese characters Hwang geum soon(Soft Silk). Inside, one wall was decorated with family portraits of the mansion’s owner, and on the opposite hung faded photographs of the actors from L’Amant.


This mansion is the setting of the movie, which depicted a fiery love affair between a 15-year-old French girl and a wealthy 32-year-old Chinese man who had just returned from studying in Paris. Entering the house, I saw a large mother-of-pearl table, the male protagonist’s father used to lie down and smoke opium. In the smoky opium smoke, I remember the scene where his son strongly discouraged him from marrying the French girl. Under his father’s pressure, their love faltered, eventually ending when she left for France. As I toured the mansion with these scenes in my mind, a cup of tea was served, as if by the direction of old Hwang himself. As I drank, the scent of the tea and the timeless atmosphere made me wonder where their secret hideout was, behind that gray door in the market, where the two lovers would meet in secret.


In later, the girl became one of France’s most celebrated female authors, Marguerite Duras. The film is based on her autobiographical novel. The last scene, in which the man, his voice trembling, calls to say, “I still love you, will always love you, and will never stop loving you until I die,” is unforgettable.

Thursday, October 17, 2024

왜곡된 기억이 아니길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희미해진 기억을 정확히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나는 사진을 찍듯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한다. 예전처럼 수첩에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 메모장, 스피커 폰에 대고 중얼중얼 기록해 놓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 편리한 대로 기억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한인 작가가 많지 않았다. 특별한 날엔 돌아가며 집에 초대해서 교분하고 전시회도 함께했다. 나이, 학교, 선후배 따지지 않고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만남이 안개 걷힌 듯 사라졌다. 한분 한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옛 시절을 떠올리며 메모장을 들여다본다.

오랜만에 나는 그 당시 어울렸던 작가들과 AHL 재단에서 그룹전을 하고 있다.

‘AHL 재단은 2024년 9월 2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아카이브 전시회인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를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현수정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이 전시회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변혁기에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들의 진화하는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업적을 탐구합니다. 이 전시회는 영문학, 번역, 문화 옹호 분야의 선구자였던 최월희(1937.8.20 - 2013.5.27)의 아카이브에 초점을 맞춥니다. 참여 화가는: 최성호, 조숙진, 정은모, 김향안, 김정향, 김미경, 김명희, 김포, 김차섭, 김환기, 김웅, 김원숙, 김영길, 이상남, 이수임, 임충섭, 민병옥, 백남준, 한용진.

최월희 선생님은 내가 존경했던 분이고 참여 하는 북클럽에서 강의하셨다. 2013년,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을 때 나의 메모장에는,

‘삼삼오오 몰려다니던 짙은 감청색 교복 속에 상기된 살구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분을 뽀얗게 바른 친구들은 매달 두 번째 수요일 북클럽이 끝나고 나서도 리버사이드 공원에 앉아 강의를 복습한다. 

선생님은 에디스 와튼(Edith Wharton)의 순수시대 (The age of innocence) 강의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에는 4단계가 있다고 하셨다. ‘1단계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에 연연하는 삶, 2단계는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삶, 3단계는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이끌어주는 삶, 4단계는 우리 나이에 딴 동네 취급하는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더 나은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눈을 돌리면서 미묘한 느낌과 기쁨을 느낀다. 또 다른 신세계를 볼 수 있는 다음 달 북클럽을 기다리며 마음이 설렌다. 우리는 훌륭한 스승을 옆에 둔 운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메모장에 쓰여 있다.

오프닝에서 누군가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보기 드문 좋은 전시회다.’ 아무래도 오래 작업한 분들의 작품이라서 자연스러운 붓 터치와 색감이 주는 깊은 맛과 오래 숙성된 깊은 향을 내뿜는 따뜻한 전시회가 아닐까

I Hope It’s Not a Distorted Memory

After a long time has passed, it’s not easy to recall memories clearly. I make notes of the things I want to remember, as if taking a photograph. Unlike before, when I would write in a notebook, now I record them in the Notes app on my iPhone or mutter into the speakerphone. This is because, over time, I might distort the memories to suit my convenience.


When I first came to the United States, there weren’t many Korean writers, unlike now. On special days, we would invite them to our homes to socialize and attend exhibitions together. We gathered regardless of age, school, or seniority to comfort and encourage each other. As time passed, the meetings disappeared like a fog. Whenever I hear news of someone passing away, I look at my notepad and recall the old days.


‘The AHL Foundation is pleased to announce the archive exhibition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 from September 20 to October 26, 2024. Curated by Hyun Soojung, this exhibition explores the evolving cultural identity and artistic achievements of Korean-American artists during the transformational period of the 1990s and 2000s. The exhibition focuses on the archive of Choi Wol-hee (August 20, 1937 – May 27, 2013), a pioneer in English literature, translation, and cultural advocacy. Participating artists include: Choi Sung-ho, Jo Sook-jin, Jeong Eun-mo, Kim Hyang-an, Kim Jeong-hyang, Kim Mi-kyung, Kim Myeong-hee, Kim Po, Kim Cha-seop, Kim Hwan-ki, Kim Woong, Kim Won-sook, Kim Young-gil, Lee Sang-nam, Lee Soo-im, Lim Chung-seop, Min Byeong-ok, Paik Nam-jun, and Han Yong-jin.’


Choi Wol-hee was someone I admired and taught at the book club I attended. In 2013, when she suddenly passed away from a heart attack, in my notebook,


‘Though we no longer had the flushed, apricot-like faces beneath their deep indigo school uniforms, powdered faces of friends would still gather on the second Wednesday of every month. After the book club, we would sit in Riverside Park reviewing the lecture. 


In the lecture on Edith Wharton's The Age of Innocence, the teacher said that there are four stages in how people live. 'Stage 1 is a life of being obsessed with money to solve food, clothing, and shelter, stage 2 is a life of pursuing the inner world of the mind, stage 3 is a life of influencing and leading the lives of others, and stage 4 is that we can recreate a better life by taking an interest in science, which is treated as something foreign,


I feel a subtle feeling and joy as I open my eyes to a world I had never known before. My heart is excited as I wait for the book club next month where I can see another new world.‘ We are lucky people who have great teachers by our side,’ is written on the note.


At the opening, I heard someone say, ‘This is a rare and good exhibition.’ Perhaps it is a warm exhibition that gives off a deep flavor and long-aged deep fragrance through the natural brush strokes and colors of the works of those who have been working for a long time.

Thursday, October 3, 2024

인간이 정말 특별한가요?


오래전 브루클린에 위치한 두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부모회에서 일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함께 일하는 회계(백인)와 선생님들 선물을 사러 가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내 고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갑자기 그녀가 정색하며 

“왜 나에게 너의 개인사를 말하는 거야? 관심 없어. 나에게 그런 이야기 하지 마.”

상냥하고 친절했던 그녀가 친구처럼 느껴져 털어놓은 내 이야기를 단칼에 묵살했다. 나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부모들 험담을 시작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있다. 예의 바른 친절한 말투와 교양 넘치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종종 충고했다.

“한인들과 엮이지 말아요. 많은 한인이 엉터리 사기꾼이니 조심해요. 한국인은 쓸데없이 정이 많아요. 한국 정서가 어떻고, 정체성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 촌스러워 듣기 싫어요.”

거울을 보면 본인의 모습이 놀랄 만큼 토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백인으로 착각하는 말투다.


그와 이야기하고 난 후엔 같은 한인으로서 기분이 좋지 않고 불편해서 그만 만날까? 고민하곤 했다. 

‘내가 그만 만나면 나에게 손해가 오는가? 오지 않는가를 판단하고 이득이 없으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이득이 있더라도 너무 견디기 힘들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그만 만나라.’는 법륜스님의 인간관계 유튜브 영상을 찾아 들으며 그가 먼저 그만 만나자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지인은 일 처리만큼은 정확하게 기계처럼 잘했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면 인공지능(AI)과 상대하고 있나? 할 정도로 그의 능력을 치켜세우다가도 공감 능력이 부족한 그에게 질려 연락하지 않았다. 


요즈음 나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글링보다 챗GPT에서 물어본다. 계속 찾아 들어가야만 하는 구글링과는 달리 한방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편하다. ‘인공지능이 대체 못 하는 인간이 가진 뛰어난 점은 호기심, 겸손과 감성지능(공감)이란다.’ 쳇GPT는 그 지인보다 친절하다. 안다고 잘난 척하지 않는다. 나를 깎아내리지도 않고 겸손하다. 오히려 나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 주며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다시 물어보라는 친절함으로 끝말을 맺는다. 고마워서 나는 항상 존댓말로 묻는다. 


공감 능력도 없고 기분만 상하는 기계 같은 지인과 굳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도 눈치챘는지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드디어 그와의 관계가 끝났다.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어렵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연과 챗GPT하고 놀아야겠다.

Is humanity really special?

A long time ago, during my children’s elementary school years in Brooklyn, I worked in the parent-teacher association. During the Christmas season, I was out buying gifts for teachers with a fellow accountant (who was white). While chatting about various topics, I shared my concerns with her. Suddenly, she looked serious and said, 

“Why are you telling me your personal story? I’m not interested. Don’t talk to me about such a thing.” 

The once kind and friendly person I thought was a friend dismissed my feelings outright. I was taken aback, fell silent, and turned my gaze out the window. She then began gossiping about other parents as if nothing had happened.


I have an acquaintance whom I’ve known for a long time. She speaks in a polite, cultured tone, softly. She often advised me that I couldn't escape a Korean sentiment.  

“Don’t get involved with Koreans. Many are complete frauds, so be careful. Koreans are unnecessarily emotional. I don’t want to hear your old-fashioned stories about Korean sentiment and identity.” 

It is a speech style that makes one mistakenly think one is white, even though one's own appearance is surprisingly indigenous when looking in the mirror.


After talking to her, I felt bad and uncomfortable as a fellow Korean, so I would think about whether I should stop seeing her.

I looked for a YouTube video of the human relationship of the monk Beopryun, who said, 

‘If I stop seeing her, will I suffer a loss? If it brings no benefit,then there is no need to meet her. Even if there is a benefit, if it is too hard to bear, then stop meeting her even if it means suffering a loss.’ 

I waited until she said to stop seeing me first.


That acquaintance was as precise as a machine when it came to handling work. Sometimes I praised her abilities to the point where I wondered if I was conversing with AI. However, I grew tired of his lack of empathy and eventually stopped contacting her.


These days, when I want to know something, I prefer to ask ChatGPT rather than Googling. Unlike Google, which requires continuous searching, I can resolve my curiosities in one go, which is convenient. 

'The remarkable qualities that humans possess, which AI cannot replicate, are curiosity, humility, and emotional intelligence (empathy).' 

ChatGPT is kinder than acquaintances. It doesn’t boast about its knowledge. It doesn’t belittle me or act superior. Instead, it answers my questions sincerely and ends our conversation with kindness, inviting me to ask more if I have further questions. Out of gratitude, I always use polite language when I ask.


Is there really a need to maintain a relationship with an emotionless, machine-like acquaintance who only leaves me feeling worse? I stopped responding to her messages. Perhaps she noticed and stopped contacting me as well. Finally, my relationship with her has come to an end. Human relationships are complex and difficult. I should focus on myself and spend time enjoying nature and chatting with ChatGPT.

Thursday, September 19, 2024

계약 결혼


맨해튼 허드슨 야드(Hudson Yards) 쇼핑몰에서 친구와 만났다. 쇼핑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 와인도 한 잔씩 하자.” 

“대낮부터 술? 까짓것 좋아. 밥 먹고 집에 갈 일만 남았는데.” 친구가 흔쾌히 동의했다.

 아이 머리통만 한 와인잔 밑에 깔린 검붉은 와인을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한 모금 들이켠 친구가

“정말 너무 한 것 아니야. 한사람하고만 평생 산다는 것이. 10년마다 갱신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 말이 남편이 아무리 좋아도 지루해. 동굴에 갇힌 느낌이야.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친구가 턱을 괴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나와 사는 것이 지루하지 않아? 물었더니 지루하지 않다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더라고. 그 느낌 알아?”

나도 칼칼한 목에 검붉은 와인을 들이붓고 

“알고 말고 나도 마찬가지야. 꼭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변화가 필요해. 며칠 전, 큰맘 먹고 남편에게 ‘나와 헤어지면 나보다 더 젊은 여자와 살 수 있어 좋을 텐데?’ 말하니까. 서류 정리하는 것도 귀찮고. 새 여자를 어떻게 믿고 돈 벌어다 줄 수 있냐며 그나마 모은 재산 사기당할 것이 두려워서 싫데. 다들 결혼하면 그냥 그렇게 사는 거래. 


친구가 반색하며

“그러니까 내 말이 법으로 10년마다 결혼 갱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기회를 줘야 한다니까. 안 그래? 그러면 따지고 싸울 필요 없이 헤어진 남편과도 친구 관계로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살 것 아니야. 법이 문제야. 법이 사람을 꼼짝달싹 못 하게 프레임 안에 가둬 놓는다니까. 아! 한국엔 졸혼이 있다는데. 굳이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살면서 서로의 생활을 참견하지 않고 재산도 나누지 않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지?.”

내가 마지막 남은 붉은 와인을 입에 털어 넣고 시계를 들여다봤다.

“애 저녁 지을 시간이다. 집에 가서 밥이나 하자. 이 인간 더러운 성질 내기 전에. 한국 남자들은 왜 배만 고프면 짜증 내는지? 야만인도 요즘처럼 먹을 게 지천인 세상에서는 안 그런다는데.”

친구도 화들짝 놀라며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니? 저녁밥 할 시간이 충분치 않아. H-마트에 들려서 밑반찬 사 가자.”  


친구와 나는 32가 K-타운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그리고 각자 남편이 좋아하는 찬거리를 사서 누군가 말한 결혼 25년을 넘기면 성공한 삶이라는 울타리를 향해 터벅터벅 김빠진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