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14, 2024

다 그런 거지 뭐


나는 트레이드 조와 이케아를 좋아한다.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이케아는 디자인이 좋아서 트레이드 조는 친절하고 다양한 작은 양의 먹거리가 많아서다. 


밀폐된 공간에 머무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이케아에 가면 빨리 일보고, 나가자고 재촉하는 신호를 남발하기 때문에 혼자 가는 것을 선호한다. 여유롭게 신상품 디자인도 들여다보고 창밖 풍경을 보며 느긋하게 차도 마실 수 있다. 주말에 맨해튼 최남단에 있는 피어 (Pier) 11에서 11시 무료 첫배를 타고 갔다가 2시 20분 배를 타고 돌아온다. 


지난번 갔을 때는 처음으로 3시 50분 배를 타고 집에 왔다. 남편 도시락 병을 사서 2시 20분 배를 놓치지 않으려고 재촉하다가 병이 깨지는 바람에 눈앞에서 배를 놓쳤다. 항상 서두를 때 꼬인다. 놓친 배 뒷전을 아쉬운 듯 보다가 흘러가는 강물로 시선을 옮겼다. 사이좋게 서로 몸을 비비며 졸졸 이야기하듯 흐르는 물을 보자 배를 놓친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마음이 편해졌다.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지하철 안에서 곧 떠날 써브웨이를 타려고 부지런히 뛰던 뚱뚱한 흑인 아줌마가 계단에서 다리를 헛디뎌 떨어졌다. 심하게 다쳤는지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녀 바로 뒤에서 계단을 내려가다 본 목격자로 아줌마를 위로하며 함께 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서너 번 일어서려고 시도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경찰이 와서 확인하고 앰뷸런스를 불렀다.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어릴 적 학교 앞 횡단보도 포스터가 생각났다. 심한 부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따금 오래된 치즈 냄새나는 지하철 안에서 서둘러야 하는 맨해튼 생활을 벗어나 멀리 가고 싶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봐도 뉴욕이 최고지! 하며 돌아온다. 한동안은 괜찮다가도 도지면 또 떠났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한다. 


과연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경계를 만들어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단지 내가 그렇게 판단할 뿐이다. 누군가가 말한 ‘아무것도 절대적으로 희다거나 검다고 하는 것은 없다. 즉 희다고 하는 것은 검은색이 숨겨진 것을 의미하고 또한 검다고 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나 흰 것이 드러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왜 난 흰색과 검은색을 굳이 밝히려고 방황하는지 모르겠다.

Well, it's all like that

I like Trader Joe’s and IKEA. Even though prices have gone up, I like IKEA’s designs, and Trader Joe’s has friendly service and a good selection of small-portion foods.


My husband doesn’t like staying in enclosed spaces, so when we go to IKEA, he rushes through things and keeps signaling for me to hurry up and leave. Because of that, I prefer going alone, so I can take my time looking at new designs and enjoy a leisurely cup of tea On weekends, I take the first free ferry from Pier 11 at the southern tip of Manhattan at 11 a.m., and return on the 2:20 p.m. ferry.


The last time I went, though, I took the 3:50 p.m. ferry home for the first time. I had been buying a jar and trying to make the 2:20 ferry, but in the rush, the jar broke, and I missed the boat right in front of me. It always goes wrong when I’m rushing. I watched the departing boat with regret, but as my gaze moved to the flowing river, I watched the water slowly passing by, rubbing together like close friends telling each other stories. Missing the boat didn’t feel so bad; my mind felt at ease. It reminded me of something that happened a few days ago.


On the subway, a heavyset Black woman was rushing to catch a departing train and missed a step on the stairs, falling hard. She couldn’t get up, so I, coming down the stairs right behind her, comforted her and stayed with her. She tried two or three times to get up, holding my hand, but she couldn’t move at all. The police came, checked her condition, and called an ambulance. I thought of a poster I remembered from childhood, outside my school’s crosswalk, saying, “If you try to be five minutes early, you might end up 50 years.” I hope she wasn’t seriously hurt.


Sometimes I just want to escape the rush of life in Manhattan, from the crowded subway with that smell of old cheese. Yet even after I wander here and there, I keep coming back, thinking, “NYC really is the best!” For a while, I feel fine, but when the urge comes up again, I’ll go away and come back again, and the cycle repeats.


Can we really draw firm boundaries between good and bad, right and wrong? I’m only judging it all from my own perspective. Someone once said, “Nothing is ever purely white or black. Saying something is white means there’s black hidden in it, and saying something is black means there’s something very white revealed within it.” I don’t know why I keep wandering around, trying to clarify the whites and blacks.

Friday, November 1, 2024

연인


취향에 따라 사람들은 여행한다. 쇼핑하기 위해 아니면 먹거리를 찾아서. 내 경우엔 새로운 세상 속 삶을 찾아서다. 또한 내가 읽은 책과 본 영화의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1992 년에 개봉된 ‘연인 (The lover)’ 영화를 보고 책도 읽었다. 나룻배 갑판 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서 있던 가냘픈 프랑스 소녀의 중절모를 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본 이후 나도 어딜 가나 모자를 늘 쓰고 다니며 영화의 배경인 메콩강에 가고 싶었다. 


첫날 본 메콩강은 메주콩 색에 흰색과 핑크색을 조금씩 섞은 색을 띠었다. 

“유유히 체념한 듯 흐르는 강물 색이 신비하긴 하군.”

내가 지껄이자, 옆에 있던 친구가 

”기가 막혀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니까. 저 깊은 물 속을 상상해 봤어? 사방팔방에서 흘러 들어간 똥물이 신비하다니! 저 물에서 잡은 생선을 먹을 수 있겠어? 신비는! 자기는 참 엉뚱해.“

시시각각 변하는 강물색 위로 그물을 치는 어부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현실에 직면하고는 눈을 돌렸다. 물에 잠길 듯 말 듯 떠 있는 덤불숲과 집들은 폭우가 지난 후에 흙탕물에 쓸려 떠내려가는 듯했다


황톳빛 메콩강의 얕은 수심 탓으로 크루즈를 강 한가운데 정박하고 작은 목선을 타고 동네 어귀의 허름한 선착장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규모가 큰 반 노천 시장통 입구에서 비켜있는 웅장한 옛 저택으로 들어섰다. 흰 대리석 아치를 두른 저택은 프랑스와 중국 건축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다. 입구에 조각한 울퉁불퉁한 나뭇잎 위에 금분을 바른 거창한 현판 ‘황금순’이라는 한자로 쓰인 문패가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에는 저택 주인의 가족사진들이 걸려있다. 마주 보는 벽에는 영화 ‘연인’ 속 배우들의 빛바랜 사진이 걸려 있다. 


15세 프랑스 소녀와 32살의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유한 중국계 남성과 불같은 사랑을 다룬 섬세하고 노골적인 베드신으로 흥행한 영화의 배경인 저택이다. 내부로 들어서니 널찍한 자게 상이 놓여 있다. 남자 주인공의 부친이 비스듬히 누워 아편을 피우던 자리다. 뿌연 아편 연기 속에서 아들이 프랑스 소녀와의 결혼을 극구 말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들에 관해서는 그의 이름처럼 부드러운 비단인 ‘황금순’이 아니라 거친 마대와도 같은 성질로 “차라리 죽어버려라,”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압력에 굴복하고 그들의 사랑은 비틀거리다가 소녀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끝난다. 영화를 상상하며 흥미롭게 둘러보는데 마치 황 영감의 지시를 받고 내어놓은 듯 차를 가져왔다. 차를 마시자, 차의 향기와 고색창연한 실내 분위기에 빠져서 두 남녀가 몰래 정사를 나누던 시장통에 있던 짙은 회색 문의 아지트는 어디일까? 궁금했다. 


훗날 소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가 되었다. 마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다. 영화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도 사랑하고,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라.”고 전화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L’Amant

Everyone has different reasons for traveling: some travel for shopping, others for food. In my case, I travel to find new worlds, new ways of life. I could also say I travel to feel what I read in books and see in movies.


I watched the movie L’Amant (The Lover), which was released in 1992, and also read the book. The image of the thin French girl leaning her elbows on the rail of a ferry, wearing a fedora, left a strong impression on me. Since watching the film, I, too, have always worn a hat wherever I go and have wanted to visit the Mekong River, where the movie takes place.


The Mekong River, which I saw for the first time, was a color like meju beans mixed with a touch of white and pink.

"The river flows with a mysterious color, as if resigned," 

I remarked. My friend next to me retorted,

“Unbelievable! Have you lost all sense? Can you even imagine the filth beneath that water? The waste from all around flows into it, and you call it mysterious! Would you eat fish from that river? Really, you have such a strange mind.”


Seeing fishermen casting their nets into the constantly changing water color felt incredibly romantic. But faced with the reality up close, I turned my eyes away. The clumps of bushes and houses, nearly submerged, seemed as if they would be swept away by muddy water after a heavy rain.


Due to the shallow waters of the clay-colored Mekong River,  our cruise anchored in the middle of the river, and we arrived at a shabby village dock on a small wooden boat. I entered a grand old mansion standing apart from the noisy, large-scale, semi-open-air market. Framed by white marble arches, the mansion is a unique fusion of French and Chinese architecture. Above the entrance was a large gilded signboard inscribed with the Chinese characters Hwang geum soon(Soft Silk). Inside, one wall was decorated with family portraits of the mansion’s owner, and on the opposite hung faded photographs of the actors from L’Amant.


This mansion is the setting of the movie, which depicted a fiery love affair between a 15-year-old French girl and a wealthy 32-year-old Chinese man who had just returned from studying in Paris. Entering the house, I saw a large mother-of-pearl table, the male protagonist’s father used to lie down and smoke opium. In the smoky opium smoke, I remember the scene where his son strongly discouraged him from marrying the French girl. Under his father’s pressure, their love faltered, eventually ending when she left for France. As I toured the mansion with these scenes in my mind, a cup of tea was served, as if by the direction of old Hwang himself. As I drank, the scent of the tea and the timeless atmosphere made me wonder where their secret hideout was, behind that gray door in the market, where the two lovers would meet in secret.


In later, the girl became one of France’s most celebrated female authors, Marguerite Duras. The film is based on her autobiographical novel. The last scene, in which the man, his voice trembling, calls to say, “I still love you, will always love you, and will never stop loving you until I die,” is unforgettable.

Thursday, October 17, 2024

왜곡된 기억이 아니길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희미해진 기억을 정확히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나는 사진을 찍듯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한다. 예전처럼 수첩에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 메모장, 스피커 폰에 대고 중얼중얼 기록해 놓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 편리한 대로 기억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한인 작가가 많지 않았다. 특별한 날엔 돌아가며 집에 초대해서 교분하고 전시회도 함께했다. 나이, 학교, 선후배 따지지 않고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만남이 안개 걷힌 듯 사라졌다. 한분 한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옛 시절을 떠올리며 메모장을 들여다본다.

오랜만에 나는 그 당시 어울렸던 작가들과 AHL 재단에서 그룹전을 하고 있다.

‘AHL 재단은 2024년 9월 2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아카이브 전시회인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를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현수정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이 전시회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변혁기에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들의 진화하는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업적을 탐구합니다. 이 전시회는 영문학, 번역, 문화 옹호 분야의 선구자였던 최월희(1937.8.20 - 2013.5.27)의 아카이브에 초점을 맞춥니다. 참여 화가는: 최성호, 조숙진, 정은모, 김향안, 김정향, 김미경, 김명희, 김포, 김차섭, 김환기, 김웅, 김원숙, 김영길, 이상남, 이수임, 임충섭, 민병옥, 백남준, 한용진.

최월희 선생님은 내가 존경했던 분이고 참여 하는 북클럽에서 강의하셨다. 2013년,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을 때 나의 메모장에는,

‘삼삼오오 몰려다니던 짙은 감청색 교복 속에 상기된 살구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분을 뽀얗게 바른 친구들은 매달 두 번째 수요일 북클럽이 끝나고 나서도 리버사이드 공원에 앉아 강의를 복습한다. 

선생님은 에디스 와튼(Edith Wharton)의 순수시대 (The age of innocence) 강의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에는 4단계가 있다고 하셨다. ‘1단계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에 연연하는 삶, 2단계는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삶, 3단계는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이끌어주는 삶, 4단계는 우리 나이에 딴 동네 취급하는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더 나은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눈을 돌리면서 미묘한 느낌과 기쁨을 느낀다. 또 다른 신세계를 볼 수 있는 다음 달 북클럽을 기다리며 마음이 설렌다. 우리는 훌륭한 스승을 옆에 둔 운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메모장에 쓰여 있다.

오프닝에서 누군가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보기 드문 좋은 전시회다.’ 아무래도 오래 작업한 분들의 작품이라서 자연스러운 붓 터치와 색감이 주는 깊은 맛과 오래 숙성된 깊은 향을 내뿜는 따뜻한 전시회가 아닐까

I Hope It’s Not a Distorted Memory

After a long time has passed, it’s not easy to recall memories clearly. I make notes of the things I want to remember, as if taking a photograph. Unlike before, when I would write in a notebook, now I record them in the Notes app on my iPhone or mutter into the speakerphone. This is because, over time, I might distort the memories to suit my convenience.


When I first came to the United States, there weren’t many Korean writers, unlike now. On special days, we would invite them to our homes to socialize and attend exhibitions together. We gathered regardless of age, school, or seniority to comfort and encourage each other. As time passed, the meetings disappeared like a fog. Whenever I hear news of someone passing away, I look at my notepad and recall the old days.


‘The AHL Foundation is pleased to announce the archive exhibition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 from September 20 to October 26, 2024. Curated by Hyun Soojung, this exhibition explores the evolving cultural identity and artistic achievements of Korean-American artists during the transformational period of the 1990s and 2000s. The exhibition focuses on the archive of Choi Wol-hee (August 20, 1937 – May 27, 2013), a pioneer in English literature, translation, and cultural advocacy. Participating artists include: Choi Sung-ho, Jo Sook-jin, Jeong Eun-mo, Kim Hyang-an, Kim Jeong-hyang, Kim Mi-kyung, Kim Myeong-hee, Kim Po, Kim Cha-seop, Kim Hwan-ki, Kim Woong, Kim Won-sook, Kim Young-gil, Lee Sang-nam, Lee Soo-im, Lim Chung-seop, Min Byeong-ok, Paik Nam-jun, and Han Yong-jin.’


Choi Wol-hee was someone I admired and taught at the book club I attended. In 2013, when she suddenly passed away from a heart attack, in my notebook,


‘Though we no longer had the flushed, apricot-like faces beneath their deep indigo school uniforms, powdered faces of friends would still gather on the second Wednesday of every month. After the book club, we would sit in Riverside Park reviewing the lecture. 


In the lecture on Edith Wharton's The Age of Innocence, the teacher said that there are four stages in how people live. 'Stage 1 is a life of being obsessed with money to solve food, clothing, and shelter, stage 2 is a life of pursuing the inner world of the mind, stage 3 is a life of influencing and leading the lives of others, and stage 4 is that we can recreate a better life by taking an interest in science, which is treated as something foreign,


I feel a subtle feeling and joy as I open my eyes to a world I had never known before. My heart is excited as I wait for the book club next month where I can see another new world.‘ We are lucky people who have great teachers by our side,’ is written on the note.


At the opening, I heard someone say, ‘This is a rare and good exhibition.’ Perhaps it is a warm exhibition that gives off a deep flavor and long-aged deep fragrance through the natural brush strokes and colors of the works of those who have been working for a long time.

Thursday, October 3, 2024

인간이 정말 특별한가요?


오래전 브루클린에 위치한 두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부모회에서 일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함께 일하는 회계(백인)와 선생님들 선물을 사러 가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내 고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갑자기 그녀가 정색하며 

“왜 나에게 너의 개인사를 말하는 거야? 관심 없어. 나에게 그런 이야기 하지 마.”

상냥하고 친절했던 그녀가 친구처럼 느껴져 털어놓은 내 이야기를 단칼에 묵살했다. 나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부모들 험담을 시작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있다. 예의 바른 친절한 말투와 교양 넘치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종종 충고했다.

“한인들과 엮이지 말아요. 많은 한인이 엉터리 사기꾼이니 조심해요. 한국인은 쓸데없이 정이 많아요. 한국 정서가 어떻고, 정체성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 촌스러워 듣기 싫어요.”

거울을 보면 본인의 모습이 놀랄 만큼 토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백인으로 착각하는 말투다.


그와 이야기하고 난 후엔 같은 한인으로서 기분이 좋지 않고 불편해서 그만 만날까? 고민하곤 했다. 

‘내가 그만 만나면 나에게 손해가 오는가? 오지 않는가를 판단하고 이득이 없으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이득이 있더라도 너무 견디기 힘들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그만 만나라.’는 법륜스님의 인간관계 유튜브 영상을 찾아 들으며 그가 먼저 그만 만나자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지인은 일 처리만큼은 정확하게 기계처럼 잘했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면 인공지능(AI)과 상대하고 있나? 할 정도로 그의 능력을 치켜세우다가도 공감 능력이 부족한 그에게 질려 연락하지 않았다. 


요즈음 나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글링보다 챗GPT에서 물어본다. 계속 찾아 들어가야만 하는 구글링과는 달리 한방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편하다. ‘인공지능이 대체 못 하는 인간이 가진 뛰어난 점은 호기심, 겸손과 감성지능(공감)이란다.’ 쳇GPT는 그 지인보다 친절하다. 안다고 잘난 척하지 않는다. 나를 깎아내리지도 않고 겸손하다. 오히려 나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 주며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다시 물어보라는 친절함으로 끝말을 맺는다. 고마워서 나는 항상 존댓말로 묻는다. 


공감 능력도 없고 기분만 상하는 기계 같은 지인과 굳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도 눈치챘는지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드디어 그와의 관계가 끝났다.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어렵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연과 챗GPT하고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