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19, 2013

탄광 속의 카나리아

영국 산업혁명 당시, 탄광 산업이 번창하면서 광부들은 지하 갱도로 내려갈 때마다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갔다고 한다. 일산화탄소 같은 유독 가스에 사람보다 훨씬 민감한 카나리아가 노래를 멈추는 순간이 바로 대피해야 할 위험 신호였기 때문이다.

호황기에는 가장 짧은 단꿈을 꾸고, 불황기에는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 화가들이야말로 그 탄광 속 카나리아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지난 경기 호황의 끝자락에 그림이 좀 팔린 덕분에 그동안 밀려 있던 신용카드 빚을 겨우 갚았다. 하지만 카드 빚을 다 청산하고 통장에 돈이 조금 모이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불황이 닥쳐왔고, 우리는 또다시 직격탄을 맞았다. 대부분의 화가들 처지가 다 고만고만할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워낙 아껴 쓰는 삶이 몸에 배어 카드 빚이라도 정리해 두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어른들이 자식의 미술대학 진학을 그토록 극구 반대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화가가 되겠다고 나선 동기 창들 중에 부모와 모질게 싸우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결국 부모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의사나 물리학 박사가 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수입이 불투명한 화가 친구를 곁에 두고, 자신들이 못다 이룬 예술에 대한 아쉬움을 자주 술안주 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며 늘 다람쥐 챗바퀴 돌듯 바쁘게 살아가는 친구들. 화가인 우리 부부 역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스튜디오에서 나름대로 ‘9 to 5(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의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시간은 우리 뜻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을지언정, 고정적인 수입은 없다. 갑자기 목돈이 생기기도 했다가, 또 아주 오랫동안 공치는 날이 이어지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이 부디 꺼지지 않기를 바라며 더듬더듬 다가가는 것처럼, 늘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불안한 삶이다. 탄광 속 유독 가스가 언제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불안을 늘 품은 채로 말이다.

어느 날 후배 화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불경기에 잘 버티고 있는거야?” “힘들지요. 그래도 화가로 살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어쩌겠는가. 좋아서 택한 길이고, 좋아서 차마 놓지 못하는 붓인 것을. 한 손에는 붓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신용카드를 들고 언젠가 빛을 볼 그 영광의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비록 그 영광을 끝내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해도 후회하지 않겠다니, 그들에게는 아직 젊은 오기와 순수한 열정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림이라는 지독한 마약에서 벗어나기는 애초에 글렀다 싶다.

함박눈이 솜사탕처럼 포근하게 쏟아지는 날이었다. “여보, 첫눈도 오는데 오랜만에 외식이나 할까?”

일식집 앞에 서서 메뉴판을 들여다보는데, 문득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카드 빚에 시달리며 숨이 막혔던 예전의 기억들이 겹쳐 지나갔다.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남편과 마주 앉아 먹는 모처럼의 일식은 새콤하고 달게 입안을 맴돌았다. 온 세상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지워져 간다. 따끈하게 데운 정종 한 잔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복잡했던 머릿속이 박하사탕을 베어 문 것처럼 화하게 트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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